세상물정 모르는 여성이 있었다. 신성로마제국 여황제 마리아 테레지아 막내딸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린 나이에 정략결혼으로 나중에 루이 16세가 된 프랑스 왕세자에게 출가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혁명이 막 발아(發芽)하던 시기였다. 그녀는 궁궐 밖에서 빵을 달라고 외치는 백성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해요”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증오의 대상이 필요했던 당시 민중들에게 그녀는 좋은 먹잇감이었음은 분명하다. 마리 앙투아네트 얘기다.
유난히 긴 장마로 채소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살아있다면 그녀에게는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녀의 방식대로라면 채소가 없으면 다른 ‘어떤 것’을 먹으면 될 테니까 말이다. 계속되는 폭우로 50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되는 피해에 비할 바는 더더욱 아니다. 수마에 집을 빼앗긴 이재민도 6천여명에 육박하고 있다. 유례없는 수해에 뜬금없이 뭔 푸성귀 타령이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경제는 디테일의 문제다.
최근 청상추와 양배추, 배추 등 대표 엽채류(잎줄기채소) 도매가격은 1개월 전보다 60~107% 급등했다. 대형 마트에서 거래되는 손질 배추 1개 판매가격은 3천980원으로, 2주일 전 3천300원보다 21% 올랐다. 지난달 초 2천200원이었던 ‘논산 양촌 상추’ 200g 판매가도 같은 날 2천980원으로, 한달 만에 35%나 뛰었다. 무 1개 가격도 같은 기간 1천500원에서 1천680원으로 상승했다.
장마가 끝난 뒤 폭염이 이어지면 작물이 짓무르면서 출하량이 급감한다. 이 때문에 농가에선 이번 사태가 추석까지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살았던 시대와 지금과의 수평 비교는 의미가 없겠다. 하지만 위정자들은 모름지기 서민들의 궁핍한 시장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게 참 정치이기 때문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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