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올여름은 빈손으로”…장마에 폭염까지 두 번 우는 염전

54일간 이어진 역대 최장 장마로 염전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18일 오후 화성시 서신면 공생염전에서 염부 이순용씨가 텅빈 수레를 바라보며 허탈해하고 있다.조주현기자
54일간 이어진 역대 최장 장마로 염전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18일 오후 화성 서신면 공생염전에서 대표 이순용씨가 텅 빈 수레를 바라보며 허탈해하고 있다. 조주현기자

1953년, 전쟁을 피해 화성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은 직접 둑을 쌓아 바닷물을 막기 시작했다. 함께 등짐을 나르던 이들은 4년 만에 염전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고 함께 살아가자는 뜻을 담아 ‘공생(共生)’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8일 오전 10시께 화성시 서신면의 공생염전. 해가 떠올라 한창 바빠야 할 시간이지만, 4만여㎡에 달하는 염전엔 고요함만 가득했다. 54일간 이어진 역대 최장기간의 장마로 올여름을 빈손으로 보낸 데다 뒤이어 찾아온 불볕더위 탓에 염부들은 작업에 나설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좋은 소금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적당한 햇볕과 바람이 3~4일간 이어져야 하는데, 뜨겁고 습하기까지 한 요즘의 날씨는 염부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직접 염전을 일군 아버지의 가업을 지켜 64년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공생염전 대표 이순용씨(68)는 드넓게 펼쳐진 염전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씨는 “소금이 많이 나올 때는 한 달에 50~60t 정도 나온다”며 “그래도 작년 7월엔 20t가량 생산했는데 올여름은 하나도…”라며 고개를 저었다.

공생염전이 위치한 서해 바다의 염도는 통상 2도지만, 많은 비가 내려 지금은 0도까지 떨어졌다. 증류지에 모은 바닷물을 증발시켜 염도가 28도까지 올라야 결정지로 옮겨 소금을 걷어낼 수 있다. 하지만 묽어진 물에 높은 습도까지 겹쳐 언제 결정지로 옮길지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씨는 “비가 오기 전에 결정지로 옮겨둔 소금물이 있어 그걸 작업하고는 있지만, 3만3천여㎡(1만평) 가득 받아둔 바닷물은 언제 결정이 맺힐지 모르겠다”며 “한 달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

18일 오전 화성 서신면의 공생염전에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다. 공생염전이라는 이름에는 '함께 살아가자'는 염부들의 의지가 담겨 있다. 장희준기자
18일 오전 화성 서신면의 공생염전에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다. 공생염전이라는 이름에는 '함께 살아가자'는 염부들의 의지가 담겨 있다. 장희준기자

경기도 전역에 폭염경보가 내려진 요즘, 이씨를 비롯한 염부들은 새벽 3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한낮에는 뙤약볕이 쏟아져 작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오전 10시께 첫 번째 작업을 마치면 해가 떠있는 동안 염부들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염전에 펼쳐진 바닷물을 바라보며 소금이 맺히길 기다릴 뿐이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잠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지만, 그나마 허락된 시간은 2~3시간에 불과하다.

오후 4시께 뜨거운 햇볕이 잦아들자 이씨는 자기 몸보다 큰 대패를 집어들고 염전으로 나섰다. 대패는 폭 2m의 장비로, 바닷물을 고르게 펼치고 또 결정으로 맺힌 소금을 걷어낼 때 쓰인다. 하늘이 고스란히 비치는 염전 위에서 대패질이 시작됐다. 해가 저물기 전에 조금이라도 소금꽃을 피워내려는 간절한 움직임으로 그의 작업복은 금세 흠뻑 젖어들었다.

장희준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