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비 공연의 영상화 작업 필요”
코로나19가 2020년 연극계까지 초토화 시키고 있다. 다양한 연극이 올라서던 소극장부터 대형 극장까지 모두 문을 닫고 있다. 특히 인천문화재단 자체 조사 결과 코로나19로 행사가 취소되면서 어려움을 겪는 예술인들은 95.8%에 달했다.
이에 따라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에서는 지난 19일부터 매주 수요일 ‘연극이 있는 저녁’ 예술 강좌를 준비했다. 연극이 있는 저녁은 6명의 연출가와 함께 한국 연극의 현장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강좌다. 이날 첫 강연에는 전직 문화부장관과 국립중앙극장 극장장을 역임하고 ‘서편제’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김명곤 배우 겸 연출가와 이주영 평론가가 대담을 진행했다. 김 연출가는 코로나19 에 대비해 공연계에서도 공연을 영상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좌는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 발령에 따라 전면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이주영 평론가 연출가=연극에 입문한 계기가 특이하다. 대학 때 연극반 갔고 이를 시작으로 연극인, 영화인으로도 활동 중이다. 졸업을 하고 나서는 잠시 연극을 쉬었다. 연극 현장에서 약간의 환멸을 느껴서 그만두셨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나서 잡지 ‘뿌리깊은 나무’에서 기자 활동도 하고 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경제 활동을 관두시고 다시 돌아온 계기 이유가 궁금하다 여러 가지 고민이 있을 것 같다. 부담감을 안고 다시 연극 이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김명곤 연출가=나도 연극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못 했다. 그래서 직장생활 한다고 ‘뿌리깊은 나무’라는 인기 있는 잡지사에 합격했다. 그 때는 ‘뿌리깊은 나무’ 기자라면 월급도 많이 줬고 긍지도 많았다. 거기서 전통문화를 현대화하는 칼럼을 많이 쓰고 숨어사는 전통시대 예인을 발굴해 인터뷰하는 일들을 하는 게 즐거웠다. 그런데 연극이 너무 하고 싶더라. 그래서 1년 만에 사표내고 교사로 취업하면서 교사극단에서 연극하면서 학생 가르쳤지만 연극에 대한 열망이 도저히 채워지지가 않았다. 대단한 배우가 되고 싶던 게 아니라 작품을 쓰고 싶고 일종의 창작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창작과 관련 없는 시간을 견디지 못했다.
▲이주영 평론가=연극 이외의 활동을 하면서도 연극과 긴밀하게 접속해서 그런 힘이 도출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전통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하는데 ‘김명곤’하면 우리나라에서 판소리를 빼놓고 얘기하기 어렵다. 저작을 읽어보면 주변 좋은 친구 분이 많은 것 같다. 연극 시작한 계기도 그렇고 판소리 배운 계기도 친구들 손에 이끌려서 관련 수업을 듣게 되고 국악원이나 유명한 명창 등 우연에 의해 전통과 접속했다.
▲김명곤 연출가=정말 우연한 만남이었다. 제가 판소리를 처음 만난 게 대학교 3학년 몸이 아파서 휴학하면서 집 전주에 내려갔을 때 친구 따라 국악원 판소리를 수강했다. 이후 겨울에는 폐결핵을 앓아서 지리산 암자에 요양하러 갔는데 거기서 나무도 하고 잡일을 하는 할아버지가 판소리를 좋아해서 거기서 배웠다. 그 다음에는 박조월 선생님을 만나 한 달 수업료 낸 후 2번째 달에는 학원비를 낼 돈이 없다 하니까 공짜로 다니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그 당시 대학가에서 붐이 있었던 전통문화 붐과는 좀 관계가 없다. 다만 독문학을 공부하면서 파우스트 배우는데 괴테가 파우스트 쓰려고 공부한 것은 자기나라 전통 문학, 설화, 신화였다. 그래서 나도 괴테가 독일 전통을 발굴했다면 나는 우리 전통을 재창작하면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주영 평론가=전통의 시대화를 얘기했는데 그 과정에서 배우 연기자 이런 용어보다는 광대라는 용어를 주로 쓴다. 선생님이 쓰는 광대는 사전적 의미의 광대 의미를 넘어선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사전적 의미의 광대가 아닌 따로 정의내린 광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김명곤 연출가=광대라고 하면 어릿광대 서양에서 말하는 피에로 연상하는데 제가 얘기하는 것과 다르다. 전통시대에도 탈춤이나 전통 예술 속에 굉장히 많은 연기론이 있다. 전통시대 광대가 사실 배우이기도하고 음악가 무용가 다 현대의 예술가다. 그래서 저도 전통시대 쓰인 광대라는 표현을 현대 예술에 넣어봤다. 그리고 광대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예술가로서 연기자로서 전통시대 예인들은 어떻게 얘기를 했는가를 고민했다.
▲이주영 평론가=선생님이 말한 광대정신 세계관이 본격적으로 표현되는 게 극단 아리랑 결성을 통해 이뤄진 것 같다. 극단이 광대 정신 세계관만으로는 지속되기에는 유지되기에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극단 창단을 통해 겪었던 어려움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 특히 외부로부터의 부침도 있다. 연극사 파문으로 기억되는 격정만리 사건.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았던 연극인의 삶을 다룬 식민지배나 분단 등 역사적인 것을 오롯이 맞이해야 했던 예술인 삶을 다루기도 했다.
▲김명곤 연출가=나는 아마추어 연극인이니까 주류 연극계의 흐름에 의문이 가는 게 많았다 여러 자료 찾고 해서 연극인 삶을 연극으로 만들어보겠다 일제 강점기부터 탄압 해방 후 좌우익 혼란기 625전쟁까지 시대를 가지고 연극을 만들었다. 이게 그 당시에 현대 서울연극제에서 자유참가작으로 처음에는 당선됐는데 중간에 심사위원이 참가불가 결정을 내렸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답변은 김일성을 찬양하는 연극, 반공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이 작품이 반공법 위반 여지가 있는지 공개토론하자고 종로경찰서 보안과장 등을 불러서 시사회를 했는데 여기서 보안과장이 문제 삼지 않았다.
연극협회에서 문제를 삼았던 것은 유치진으로 대표되는 주류 연극계를 친일 연극으로 극중 묘사했다는 것이다. 그 연극에서는 만주에서 항일 독립군이 연극하는 장면과 친일연극을 대비했다. 연극인의 갈라진 노선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연극협회에서 분개한 것은 남한 연극계를 친일연극을 계승한 것으로 묘사한 것인데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특히 현재 연극계가 아니고 일제 강점기는 서로 때로는 친일 항일 때로는 중도 이렇게 갈려 가면서 친구로 지냈던 3명이 나중에는 정파적으로 갈리는 비극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주영 평론가=이후 영화까지 진출하고 어찌 보면 연기 문을 넓혀주신 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2000년대 이후는 연기활동 계속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등 예술협동조합에서도 일을 하고 있지 않느냐.
▲김명곤 연출가=내가 먼저 신청을 했다. 국립극장에서 ‘백범 김구’라는 작품을 연출하면서 처음 인연 맺었는데 거기서 해보니까 정말 거기서 활동하는 예술가 분들은 정말 수준이 높았다. 그런데 극장 경영하고 운영하는 시스템은 너무 낙후돼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전부 관료가 와서 극단 운영하더라. 관료제 폐해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정도로 정상적이지 않았다. 근데 국립극장장 자리가 공모가 났다. 그 때 김대중 정부였는데, 정부가 지향하는 것이 공공기관 개혁이었다. 민간 전문가에게 책임 줘서 그 사람이 전적으로 책임지고 할 수 있도록 바꾸자 관료 제도를 바꾸자 이게 정부 방침이었다. 그러다보니 좀 개혁적 성향이 있는 젊은 운영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6년을 했다.
▲이주영 평론가=코로나19로 공연계가 어렵다. 오랜 기간 준비한 공연이 취소, 연기되거나 온라인 공연으로 전환하기도 한다. 만약 오프라인으로 진행한다고 해도 사회적 거리 두기로 많은 관객이 올 수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할 텐데 이를 대비해 연극인으로서 견해가 궁금하다.
▲김명곤 연출가=우리가 사스도 있었고 메르스도 있었는데 그 때도 딱 그 시기에 공연하는 단체는 엄청난 피해를 봤다. 근데 코로나는 더 심각하고 장기적이다. 특히 공연계는 공연 1개가 취소되면 몇 개월의 삶이 망가지는 것이고 수익이 끊긴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에서 몇 개 작품을 선정해서 영상화하고 지원금을 주는 것에 당선됐다. 제작자나 배우에게는 관객이 없더라도 공연을 할 수 잇게 하는 게 엄청난 행복이다. 또 네이버티비에서 생중계했는데 1만명 조회수가 있다는 게 실시간으로 체크된다. 공연계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한다. 꼭 극장에서 고정된 관객만을 상대해서 한다는 게 공연이 아닐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영상화 작업이 새로운 수입을 창출하는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다. 코로나 끝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더 무서운 괴질이 와서 반년동안 공연 못할지 1년 못할지 알 수 없다. 그럼 공연 종사자는 무조건 공연을 하지 않고 살아야 하나? 이런 상황이어도 핸드폰으로 찍어서라도 새로운 관객에게 다가가는 등 쉴틈없이 예술 활동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본다. 지금 상황을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기관에서 공연 매체를 영상화하는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지금은 디지털 콘택트 예산이 너무 적다. 아니 예산 확보 개념이 없다. 공연을 기획하면 공연예산과 디지털 예산도 함께 책정해야 한다.
이승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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