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고의 나날을 보내던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그는 친구들에게 무언가 깜짝 발표라도 할 모양이었을까? 1827년 10월 어느 날, 슈베르트는 친구들을 집으로 불렀다. 그리고는 자신조차도 감동하고 말았다는 자작 가곡을 불러 주었다. 우울하고 호소력 짙은, 사랑에 실패한 한 청년의 괴로움이 진하게 고여 있는 이 곡을 듣고 친구들은 모두 큰 감동을 받았다 한다. 이 곡이 바로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하고 민중의 마음이 담긴 많은 낭만적인 시를 남긴 독일의 유명한 시인 빌헬름 뮐러(Wilhelm Mueller)의 시에 곡을 붙인, 그가 남긴 최대의 걸작인 연가곡 <겨울 나그네: Die Winterreise>이다.
여기서 ‘연가곡’이란,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완결적 구성체를 가진 가곡 모음을 뜻한다.
자신의 몸 하나 편히 쉴 안락한 공간조차 갖지 못하고, 영양 섭취마저 부실한 가운데 많은 창작품을 만들어내느라 에너지를 소진해 버렸던 슈베르트는 마침내 몹쓸 병을 않게 되고 만다. 하지만 병으로 인하여 자신의 생이 죽음을 향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의 창작욕은 더욱 불타올랐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것일까? 마치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듯 가난 속에서의 시달림과 고독한 삶 그리고 몹쓸 병 속에서도 창작의 펜을 놓지 않았던 그는 1827년 몇 개의 걸작을 내놓게 되는데,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겨울 나그네> 이다.
<겨울 나그네>은 어떤 곡일까?
청춘의 서정과 아름다움이 듬뿍 담긴 <아름다운 물방앗간 집 아가씨>와는 달리 <겨울 나그네>는 음울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가득한 24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 비극적인 노래의 연가곡이다. 이 연가곡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추운 겨울 연인의 집 앞에서 이별을 고하고 한 청년이 방랑의 길을 떠난다. 죽을 것만 같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눈과 얼음으로 가득한 들판을 헤매던 청년은 어느덧 까마귀, 숙소, 환상, 도깨비불, 백발과 같은 죽음의 상념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고, 마을 어귀에서 라이어를 돌리는 늙은 악사에게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하며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이 곡이 완성된 1827년, 슈베르트에게 충격적이고 중요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가 그처럼 존경하고 우러러보았던 악성 베토벤과 친구이자 시인이었던 뮐러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병마로 인한 괴로움과 존경하고 의지하던 지인들을 잃은 상실감은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되어 그토록 아름다운 창작물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사랑을 잃은 아픈 가슴을 안고 한겨울 눈 덮인 들판을 어슬렁대는 <겨울 나그네>의 주인공은, 이 곡을 탄생시킨 이듬해인 1828년 11월 19일 31세의 젊은 나이에 가난과 병 속에서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긴긴 겨울 여행을 떠나게 되는 슈베르트의 슬픈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정승용 작곡가ㆍ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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