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서 땀흘리는 감동, 소극장만 느낄 수 있어”
“코로나19 때문에 영상화 작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데 열띠게 이야기해도 결국 대면으로 돌아옵니다.”
김정 연극연출가는 지난 26일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열린 ‘연극이 있는 저녁’ 예술강좌에서 “관객을 만나지 않고 영상 필터로만 보여지는 것이 연극일 수 있는가”라며 이같이 밝혔다.
김 연출가는 2015년 베르나르 알바의 집이라는 작품으로 연극계에 데뷔한 젊은 연출가다. 사람과 사람을 만나서 낯설고 생소한 것을 발견하는 것이 연극이라는 연극관을 가지고 있다.
김 연출가는 연극의 매력을 나보다 보잘것 없어보이는 인물이 연극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신화적인 거인으로 변모하는 순간을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꼽았다. 또 반대로 영웅적 인물이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얻는 카타르시스도 연극 현장의 즐거움이라고 설명했다.
김 연출가는 “이 사회는 가진 사람들이 영웅적으로 묘사되고 일반 대중들은 ‘난 그것보다 못해’라는 패배의식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남들보다 나으면 되고 불행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 행복의 기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이런 소극적 행복이 아니라 무한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이 많다”며 “배우 몸의 움직임. 땀, 숨소리, 온기 등 비일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주는 감동은 소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고 이런 것으로 한사람의 인생이 바뀔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 연출가는 결국 이 부분이 이 사회에 연극이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한다. 그는 “자본주의에서 쓸모없는 것으로 인식되는 연극이 단순 교양의 차원이 아니라 살아가는데 있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이 있다”며 “쓸모없다고 느껴지는 것들 역시도 내 생각이 뒤집어졌을 때 돌아보면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런 힘을 가진 매체가 연극인 것 같다”고 했다.
이날 강연에서는 김 연출가의 작품에 대한 설명도 나왔다. 김 연출가는 ‘베르나르 알바의 집’으로 데뷔해 ‘광장의 왕’, ‘손님들’, ‘임영준햄릿’, ‘처의 감각’, ‘레드 올랜더스’, ‘FARM’, ‘암중문답’, ‘자베르’ 등을 연출했다.
특히 지난 2017년에는 손님들이라는 작품으로 제54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희곡상, 신인연출상 등 3관왕을 하기도 했다. 손님들은 200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 존속살해 이후 부모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연극이다.
김 연출가는 이 연극을 연출하면서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 봐야겠다는 각오를 했다고 밝혔다. 김 연출가는 “충격적인 사건이고 이 이야기가 가지는 의미는 더욱 끔찍하다”며 “생각해보면 잔인한 사건 속 가려진 사랑받지 못한 한 생명의 이야기인데 초연을 하고 나서 연출로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었나 반성했다”고 했다. 이어 “공연을 마치고 떠나보내면서 굉장히 슬펐고 마음아픈 작품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올해 초 연출한 자베트는 전후 독일의 한 동네를 배경으로 까마귀가 말을 배우면서 평범한 사람으로 변해가는 이야기다. 김 연출가는 이 연극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평했다. 김 연출가는 “인어공주가 사람이 되는 것은 해피엔딩인데 이 이야기는 우리가 잊은 자연의 신비함이 사라져가는 내용이다”고 했다.
이어 김 연출가는 이 같은 이야기가 문학과 인문학의 중요함을 잘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문학의 언어는 똑같은 단어를 어떻게 발화하는지에 따라 귀로 듣는 사람이 상상하는 이미지가 다양해지는데 이런 언어가 사회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연출가는 “지금의 자극적 언어, 표피적인 표현만 남은 것이 아니라 과거 어른들 세대의 노래는 훨씬 문학적”이라며 “인문학적 교육이나 영향들이 계속 있어줘야 자정역할을 한다”고 했다. 이어 “그렇기에 연극 연출을 하면서 문학적인 작업을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김 연출가는 “연극은 만남이다. 그래서 지금 만나지 못하기에 힘든것이고 연극이 존재할 수 없을 수 있겠구나 절망하는 것”이라며 “배우를 보러가는게 아니라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고 하면 훨씬 설렐 것”이라고 했다. 이어 “만남을 통해서 사람이 변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게 연극의 힘이고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이승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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