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영업 폐업의 슬픔, 중고 매장에 쌓여간다

1998년 IMF 위기 때 일이다. 법원에 경매 사건이 갑자기 폭주했다. 수원지법은 업무를 담당할 경매계를 늘렸다. 기일에는 경매 참가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여기엔 국가 부도 위기의 슬픈 현실이 있었다. 금융 부실로 넘어가는 부동산이 급증한 것이다. 집, 공장, 전ㆍ답이 무더기로 경매에 붙여졌다. 3년여 뒤 법원 경매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IMF 위기가 서서히 극복되고 있었다. 그때 법원의 경매물건 급증은 국가 위기의 징표였다.

2020년 고물상에서 국가 위기가 체현되고 있다. 밀려드는 업소용 주방용기들이다. 취재진이 일산의 한 중고 주방용품 매장을 찾았다. 업소용 냉장고, 튀김 기계, 테이블 등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다. 폐업한 자영업자들이 내놓은 중고 제품들이다. 매일 수십 개씩 들어오지만 판매되는 것은 없다고 한다. 한 달에 한 개꼴도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더는 쌓아두기 어려워 고물상에 넘겨보지만, 최근에는 이것도 어렵다. 고물상이 받아주지 않는다.

안양의 한 업체는 지난해 70% 정도이던 재판매가 올해는 10%도 어렵다며 하소연이다. 수원ㆍ화성ㆍ용인 지역을 대상으로 영업 중인 한 매장은 중고품 매입을 중단했다. 문의해오는 고객들에게는 ‘차라리 고물상에 넘기라’고 안내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고 가전제품 매장마다 상품 적체가 심각하다. 매장으로 부족해 인근 도로까지 물건을 쌓아놓기 일쑤다. 사정을 알고 보면 더없이 안쓰럽다. 코로나 위기가 반영된 적나라한 광경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통계가 있다. 행정안전부 인허가 데이터에 공개된 자료다. 2월부터 4월까지 경기도의 식품업종 9천573곳이 폐업 신고를 했다. 이어 서울시 8천263건, 경남 2천692건, 부산 2천200건 순이다. 단순 통계나 인구 대비 비율 모두에서 경기도가 가장 많다. 코로나19 정국에서 여러모로 앞서가는 행정을 보인다는 경기도다. 그런 경기도의 씁쓸한 이면이다. 자영업자들이 줄폐업하고, 그 흔적이 중고매장과 고물상에 쌓이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비명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 대응 2.5단계 충격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오후 9시 영업 제한으로 문 닫겠다는 업자들이 많다. 안타깝지만,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이제 시작인듯하다. 중고 가전제품 매장과 고물상에 쌓이는 물건이 더 늘어날 듯하다. 국가 정책과 예산에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코로나19와 같은 위기에는 더욱 이 원칙이 필요하다. 정부ㆍ지자체는 지금이라도 쌓여가는 중고 제품 산더미를 헤아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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