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유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국적 석유재벌 쉘(SHELL)의 창업자 마커스 사무엘은 1870년대 일본 땅에 첫발을 들여 놓았다. 일본이 막 개방을 한 때여서 미지의 땅에 무엇인가를 찾아보겠다는 뜻에서 영국의 부모 곁을 떠난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쇼난 이라고 하는 지방의 바닷가에서 어촌 사람들이 조개를 잡아 속 살 만 그릇에 담고 조개껍데기는 백사장에 버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문득 그 조개껍데기에서 희망 같은 것이 떠올랐다. ‘그래 저 조개껍데기를 가공하여 단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즉시 서둘러 조개껍데기로 단추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그 단추들을 영국에 보내 판매하게 했는데 불티나게 팔렸다. 조개껍데기 단추로 돈을 벌게 된 마커스 사무엘은 일본에서 마커스 사무엘이라는 상회를 차리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때 그의 나이 25세. 그러면서 그는 석유를 들여와 일본과 중국에 팔아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중동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석유를 운반해 올 때 큰 드럼통 같은 용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매우 불편을 겪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고민하던 사무엘은 화물선을 통째로 석유를 채워 운반하는 것을 고안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유조선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세계 최대의 석유 왕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20대에서 30대에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미지의 땅 일본에 건너온 것이 큰 도전이었고 어부들이 내버린 조개껍데기를 부(富)의 발판으로 삼았으며 통째로 석유를 싣는 유조선을 만들어낸 것 역시 도전이었다.
공자가 30대를 일컬어 ‘이립(而立)’이라 한 것도 30대가 가진 폭발적 에너지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30대는 대학교 학번으로 치면 1998~2010학번들이고, 수능시험을 사회탐구영역과 과학탐구영역을 동시에 치른 세대이다. 결혼 후 막 육아의 짐을 짊어지기 시작했고 직장에서는 대리급이거나 주임급으로 밤새워 일해도 피곤을 모를 만큼 왕성한 세대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30대들을 매우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마커스 사무엘이 30대에 폭발했던 그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우리 젊은이들은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주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노인 일자리는 늘었으나, 30대 일자리는 4만 7천 개 감소했다. 당장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는데 사무엘처럼 조개껍데기에서 부(富)를 창출한 도전 정신이 생겨날까. 정치와 공정에 대한 불신이 큰 30대….
당장 급한 것이 주택 문제이다. 자고 나면 바뀌는 부동산 정책은 젊은 세대들에게 공포, 그것이다. 금 수저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수도권에서 내 아파트를 마련한다는 것은 절망에 가깝다. 세월이 가면 기회가 오겠지 했는데 세월이 갈수록 ‘내 집 마련’은 더 요원해진다. 그래서 퇴직 연금 깨고, 신용대출 받고, 양가 부모 도움받고… 할 수 있는 것 모두를 그러모아 집을 장만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영 일생 내 집 가질 기회가 없다는 공포가 사로잡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을 일컬어 ‘영 끌’이라고 하는데 ‘영혼까지 끌어 모은다’는 뜻이다.
지난주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은 ‘법인 등이 내 놓은 것(아파트)을 30대가 영끌 해서 샀다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 장관은 ‘영끌’을 해서라도 집을 사는 이 딱한 현실을 알고서 하는 말일까. 시무7조라는 상소문 형식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글이 큰 반응을 보여 화제인데 글을 쓴 사람이 바로 30대 가장이라는 사실이 우리 30대들의 응어리를 잘 말해주는 것 아닐까.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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