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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용의 더 클래식] ‘빈’에서 시작해 ‘빈’에서 끝난 슈베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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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용의 더 클래식] ‘빈’에서 시작해 ‘빈’에서 끝난 슈베르트

‘지음(知音)’이라는 말이 있다. 소리를 알아듣다라는 뜻으로, 말하지 않아도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이르는 말이다. 무척 내성적인 성격이었고 수줍음까지 많았던 슈베르트에게도 다행히 이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이들 친구들의 이해와 헌신적인 사랑은 슈베르트를 지탱해 주는 튼튼한 울타리가 됐다. 또한 그의 천재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되기도 했다. 그들은 ‘지음’의 본래의 뜻 그대로 슈베르트의 음악을 알아주는 친구들이었다.

슈베르트는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 친구들과 거의 매일 밤 만나 함께 연주하고 감상했고 슈베르트는 이 음악회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직접 연주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신작을 발표했다. 이 모임은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라고 불리는데 구성원들은 법률가, 화가, 시인, 음악가 등 다양한 직종에 있던 예술적 취향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이 모임에서 자신의 생각과 지식을 나누었는데 이를테면 스스로 시를 짓고 낭송하고 작곡한 노래를 부르고, 유럽의 정치와 사회적 현실을 논했다. 비록 가난한 생활을 했지만 이런 친구들로 인해 슈베르트는 결코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매우 충만했다.

무명의 작곡가 슈베르트가 만든 <마왕>을 들고 유명 악보 출판사에 찾아가 부탁을 한 것도 그 부탁이 거절되자 자신들의 돈을 모아 인쇄를 하고 그 악보를 팔아 번 돈으로 슈베르트의 밀린 방세와 각종 외상값을 해결해 준 것도 모두 이 친구들이었다. 결국 슈베르트를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이 친구들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었다.

슈베르트의 음악에는 빈의 깊은 속내와 문화적 향기가 물씬 풍긴다. 그것은 어쩌면 그가 모든 예술가들이 동경해 마지않던 꿈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고 성장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부분 음악가들은 음악의 도시 빈에서 인정받기를 원했고 일정 나이에 이르렀을 때 자신의 터전을 떠나 빈에서 음악을 펼쳤다. 하지만 슈베르트는 이미 생의 시작을 빈에서 했기 때문에 빈의 문화가 참으로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비록 방랑자였지만, 결코 빈을 두고 먼 곳으로 떠나지 않았던 슈베르트! 그의 삶과 음악은 빈에서 시작해 빈에서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살았던 빈의 집에는 슈베르트를 상징하는 동그란 안경과 늘 들고 다니며 많은 곡을 작곡했던 작은 기타가 그를 대신해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떠난 빈자리는 수백 곡의 가곡이 되어 사람들의 가슴을 채워 주고 있다. 지금 빈의 중앙묘지에 있는 슈베르트의 묘는 그가 생전에 존경했던 베토벤의 묘 옆에 자리하고 있다.

정승용 작곡가ㆍ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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