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김영란법을 완화해 농축수산물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관련 시장과 유통업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10일 오전 9시께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에 위치한 안양중앙시장. 추석 대목을 앞뒀지만 건어물ㆍ과일ㆍ육류 매장은 한산했고 상인들의 낯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시장 3번 출구 방면의 덕산건어물 가게는 작년엔 추석 때 잘 팔리는 멸치ㆍ오징어ㆍ황태포 등을 미리 주문했지만, 올해는 추석 대비 물량을 주문하지 않았다. 예약주문 전화 한 통 없는 데다 매일 첫 판매 개시도 오후 2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이뤄지기 때문이다.
10년째 건어물을 판매 중인 권순덕씨(64)는 “지난 추석엔 한 사람이 선물용 멸치를 열 상자(개당 1.5㎏) 넘게 사가곤 했는데 올해는 하나도 없다”며 “1차 재난지원금 때처럼 서민들의 소비를 촉진시켜야지, 누가 농축수산물을 20만원씩 산다고 김영란법을 푸는 거냐”고 지적했다.
이어 오전 10시께 군포시 대야미동 인근 도로변에 자리잡은 우리버섯농원은 아예 불도 켜지 않았다. 작년 추석엔 표고버섯 주문이 300건 넘게 들어오면서 정신 없이 바빴지만, 올해는 20건도 팔지 못했다. 5㎏ 한 상자에 18만원씩 하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10만원짜리 3㎏ 소포장도 마련했지만 불경기 탓에 표고버섯을 찾는 손님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앞서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날부터 내달 4일까지 공직자가 받을 수 있는 농축수산물 등의 선물 가액 범위를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늘리는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 8일 의결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축수산업계를 돕고 침체된 경기를 살리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농축수산물의 가격이 10만원을 뛰어넘을 만큼 고가인 경우는 대부분 백화점에 집중돼 있고, 백화점으로 유통되는 농축수산물은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터라 과연 청탁금지법의 일시적 완화가 농축수산물 소비 촉진에 실효성이 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농축수산물 소비를 촉진하겠다면서 크게 관련 없는 김영란법을 완화한다는 건 상징적 제스처에 가까워 보인다”며 “언택트 시대가 도래한 만큼 온라인 판매가 익숙치 않은 농축수산물 유통 상인들에게 플랫폼 지원을 해주는 방안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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