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聖殿)은 매우 중요했다. 인간은 성전에 나아가 제사장을 통해 제사를 바쳤고 하느님은 성전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직접 보여주시며 응답하셨다.
성전은 유일하신 하느님이 현존(現存)하는 장소로서 인간은 그곳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다. 로마 황제의 통치를 거부하고 하느님의 통치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에게 성전은 영혼과 육신의 안식처이자 유일한 희망이었다.
기원후 70년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로마제국의 정치적 외압에 거슬러 66년부터 시작된 제1차 유다 항쟁의 결과,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군대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종교적 차원을 넘어서 정치적·경제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성전이 눈앞에서 사라졌으니 이스라엘 백성의 상실감은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빌론 유배를 마치고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한 지 불과 60여 년밖에 되지 않아 조상이 경험했던 ‘쓰라림’을 다시 맛보아야만 했다. 실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찾아온 ‘위기’였다.
하지만 그들은 무너지지 않았다. 유다인들은 회당에서 모이기 시작하였다. 그곳에서 율법서, 곧 하느님의 가르침이 담긴 토라(Torah)를 읽고 함께 들었다. 성전의 부재(不在)로 제사를 바칠 수 없는 이들에게 랍비는 토라를 해석해 가르쳤다.
이러한 변화는 기원전 587년 성전이 첫 번째 무너진 이후 제사 제도의 붕괴와 함께 어느 정도 시작되었지만 두 번째 성전 파괴 사건은 종교적 변화의 양상에 가속도를 부여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2020년, 우리는 ‘위기 속 세상’에서 살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짧은 시간에 우리가 소유하며 누리고 있었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성당과 교회에서 미사 혹은 예배 중심의 대면 모임이 어려워졌다.
국가적 경제 손실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며 자영업자를 비롯한 소상공인들은 당장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은 가능한 모든 장치를 동원해 코로나 감염증 확산을 방지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어서 빨리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막상 그때가 되었을 때 어떤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 몰라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가 몰고 온 위기의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속수무책으로 번져 가는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무력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주저앉아 현실을 비관하며 하루를 보낼 것인가? 우리가 그리워하는 코로나 이전의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가 처한 ‘오늘’을 수용하고 우리가 맞이할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았고 그것을 발전시켰다. 비록 성전은 사라졌지만 랍비를 중심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며 그 가르침에 따라 살고자 노력하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우리의 조그만 힘을 모은다면, 우리가 모두 기다리는 그 시간은 찾아올 것이다. 2천여년 전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위기를 극복했던 모습은 분명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모범적 모델’이다.
정진만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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