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상황, 그 상황에서 나오는 행동, 행동으로 인해 나타나는 사건을 통해 인간을 깊게 이해하는 예술이고 이를 체험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안경모 극단 연우무대의 상임 연출가는 지난 16일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열린 ‘연극이 있는 저녁’ 예술 강좌에서 “연출을 하는 이유는 인간의 내면,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배경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안경모 연출가는 연극을 중심으로 공연과 뮤지컬을 연출하는 중견 연출가다. 연극으로는 해무, 진실X거짓 등을 연출했다. 그는 연극을 ‘지금 여기의 공감각적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에 현재 코로나19 시대에서 대안으로 나오는 연극의 영상화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 오페라 스토킹 ‘허상의 세계를 현실의 세계로 믿는다면’
‘오페라 스토킹’은 안 연출가가 지난 2005년 연출한 작품으로 서울연극제 관객이 뽑은 인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안 연출가는 이 작품이 이메일의 본격적화로 가상세계가 확장하면서 발생한 익명성 문제를 작품화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가상세계가 확장하고 이와 함께 도시 풍경도 급격히 변하면서 관계의 파편화, 인간의 소외 문제가 대두되겠다고 생각했다”며 “이를 키워드로 작품에 대한 고민을 했다”고 했다.
안 연출가는 이 작품을 준비할 때 ‘스토킹’, ‘미디어’, ‘음악탐닉’ 등 3개의 키워드를 구상했다. 안 연출가는 사람이 허상의 세계에 집착할 때, 나만의 가상 세계에서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나타나는 현상을 스토킹으로 생각했다. 또 미디어가 현실 세계의 모든 것을 잠식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2개 키워드로는 극의 흥미로움이 적겠다고 판단, 사람이 이상적인 세계를 구현할 때 가장 와 닿는 예술 장르인 음악을 작품에 추가해 연출했다.
■ 돌아서서 떠나라 ‘나의 사랑이 타인을 죽게 한다면’
‘돌아서서 떠나라’는 작품은 안 연출가가 2009년 연출한 작품이다. 안 연출가는 ‘나의 친구가 내 사랑으로 죽게 된다면 난 어떤 선택을 할까’라는 질문 속에서 이 작품을 연출했다. 그는 “이 작품을 쓴 이만희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작품을 통해 키에르케고르 식의 실존적 질문을 하고 싶다고 적었는데 개인적으로 작품 자체가 신파적이고 대중적일 것이라 생각해 키에르케고르의 질문이 뭘까 궁금했다”고 했다.
이어 “삶은 자기반성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조폭인 남자주인공이 마지막에 친구가 자기 대신에 잡힌 것을 보고 자수하는 게 자기반성적”이라고 덧붙였다.
■ 해무 ‘망망대해 속 길을 잃는다면’
‘해무’라는 작품은 안 연출가가 2007년 연출한 작품이다. 이후 작품이 흥행하면서 안 연출가는 2009년 이 작품을 예술의전당에서 다시 연출하기도 했다.
안 연출가는 이 작품을 관통하는 것이 시지포스의 고난이라고 설명했다. 시지포스는 끊임없이 돌을 산 위로 올리지만 정상에 다다르는 순간 돌은 다시 산 밑으로 떨어진다. 안 연출가는 시지포스의 고난처럼 인간의 고난과도 같은 삶을 작품을 통해 표현했다.
안 연출가는 “현실의 선택이 미궁에 치닫는다면 그로 인해 속수무책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의도치 않게 죄를 짓고 또 더 큰 죄를 짓게 되는 내용을 작품화했다”며 “인간 윤리와 선택에 대한 내용”이라고 했다.
■ 그리고 또 하루 ‘삶의 늪에 빠져 절망 속에 빠진다면’
‘절망과 푸념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무인도에 갇힌다면’, ‘선택이란 단어마저 무의미한 절망에서 자립한다는 것은’, ‘독립된 여성의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
안 연출가가 2013년 연출한 그리고 또 하루라는 작품은 어찌 보면 인간이 선택을 할 수 있던 해무의 작품세계에서 이제는 선택지도 없는 작품세계로 나아간 작품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안 연출가는 여성의 독립, 자립 등을 표현한다.
■ 스웨트 ‘일자리를 잃은 분노가 인종을 향한다면’
안 연출가는 마지막으로 2020년 10월 온라인 송출 예정인 ‘스웨트’라는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이 작품은 노동 상실과 인종편견을 작품화한 미국의 소설 스웨트라는 소설을 연극으로 만든 것이다. 노동은 인간에게 경제적 수단으로만 존재하는지, 코로나 시대 직장 폐쇄, 정리해고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흑인, 백인, 히스패닉 등 인종차별이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에 대한 작품이다.
안 연출가는 “우리사회도 다민족사회인데 한민족만큼 인종편견이 강한 곳도 없다”며 “이 작품은 미래의 우리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승욱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