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경기도 박물관ㆍ미술관 다시보기] 23. 하남역사박물관

역사속으로 떠나는 가을여행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고려 성종대 지방행정의 요지인 12목 중 광주목이 위치했던 하남은 다양한

고려시대 유물도 출토된다. 보물 제332호인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과

다양한 고려시대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윤원규기자

우리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대, 치열했던 역사의 무대는 과연 어디일까. 대륙으로 진출하여 수당과 경쟁하던 고구려, 일본으로 선진문화를 전파한 백제, 백제에 밀리다가 뒤늦게 분발하여 삼국통일의 주체가 된 신라가 있다. 삼국시대는 오늘날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과 가장 닮은 시대가 아닐까. 한강은 여의주와 같았다. 세 나라는 한강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한강을 가장 먼저 차지한 세력은 온조가 건국한 백제였다. 한성백제, 위례백제의 찬란한 역사가 숨 쉬는 곳이 하남이다. 하남문화재단(이사장 김상호) 하남역사박물관은 하남 유일의 박물관이다. 오랜 역사와 풍부한 유적을 가졌음에도 2004년에야 박물관 문을 연 까닭에 하남시민들은 도시 역사를 알고자 서울로 찾아갔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에서도 ‘찾아오는 박물관’이 되었다. 김진성 학예조사팀장은 하남역사박물관을 이렇게 소개한다. “우리 박물관은 지역문화유산의 거점 기관으로 박물관대학을 비롯해 학생부터 노년층까지 지역민과 교감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심도 있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1천여점의 유물을 상설전시하고 있는데, 전시품의 95% 이상이 하남지역에서 출토되거나 하남시와 관련된 유물입니다”

2004년 6월 개관한 하남역사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하

남시의 역사를 보여준다. 현재 하남시에는 국가지정 문화재 8개, 도지정 문화

재 4개 등 다양한 문화재가 위치하고 있다. 하남역사박물관 전경. 윤원규기자

■ 유구한 역사를 품은 ‘하남’

하남시는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이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미사리 유적(사적 제269호)과 백제의 비밀을 간직한 이성산성(사적 제422호)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유적이다. 오층석탑(보물 제12호)과 삼층석탑(보물 제13호)이 나란히 서 있는 절터 동사지(사적 제352호)와 국내 최대 규모인 철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332호)이 발굴된 천왕사지, 교산동의 마애약사여래좌상(보물 제981호) 같은 유적과 유물은 하남이 고려 불교의 중심 무대였던 사실을 알려준다. 그뿐인가. 광주향교(문화재 자료 제13호)와 사충서원은 유교 국가 조선의 교육과 정신문화를 살필 수 있는 유적이다.

하남역사박물관은 하남의 유구한 역사를 품은 다양한 유물을 한눈에 관람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3층 상설전시실은 하남지역의 선사시대 인류의 생활 모습과 백제의 문화, 고려시대 불교문화를 두루 살필 수 있다. 아름다운 물결과 모래로 이루어진 섬이란 뜻을 지닌 미사리(美沙里)는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한 보물섬이다. 1960년에 발굴된 미사리 유적을 비롯하여 선동, 춘궁동 유적에서 빗살무늬토기와 마제석기가 발견되면서 신석기시대로 알려졌다. 이후 정밀한 발굴로 1천600여 점의 찍개, 긁개 같은 유물이 쏟아졌는데 연구를 통해 후기구석기시대 유적으로 확인되었다. 1979년에 사적 제269호로 지정된 미사리를 1980년대 후반에 다시 정밀하게 발굴 조사하여 미사리 유적은 신석기부터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전기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주거지 등 총 466기의 유구가 확인되었고, 빗살무늬토기 석부 석촉 어망추 지석 같은 유물과 한성백제시대의 생활도구와 무기가 출토되었다.

구멍무늬토기, 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라는 긴 이름의 토기가 있다. 작은 구멍이 촘촘하게 뚫려 있다. 유물을 보면서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을까를 상상해 보는 것도 유물을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3층 고려실에 전시중인 다양한 수막새의 모습. 수막새는 숫기와 끝에 원형

의 드림새를 덧붙여 제작한 것으로 기와 끝에 사용돼 빗물이 건물 안으로 들

이치는 것을 방지해 준다. 윤원규기자

■ 역사적 상상력을 키워주는 공간

근초고왕 대에 번영을 누리던 백제는 고구려와의 전쟁(5세기)과 신라와의 전쟁(6세기)을 치르면서 국력이 쇠퇴하여 하남지역은 신라의 차지가 되었다.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조선의 학자들이 하남지역을 백제 초기의 도읍인 하남위례성의 유력한 후보지로 꼽았다. 하남의 백제 유적으로는 미사동 유적과 덕풍동 수리골 유적, 광암동 고분군이 있다. 수리골 유적에서는 백제 토광묘, 광암동 유적에서는 횡혈식석실분이 확인되었고, 가밀동에서 백제 석실분 52기가 발굴되었다. 김진성 학예조사팀장은 이러한 무덤을 특화한 박물관을 머잖은 장래에 건립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 준다.

옛사람들은 죽음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3층에 전시된 두 개의 항아리가 그 비밀을 풀 단서를 던져준다. 백제의 분묘문화를 볼 수 있는 특별한 유물이다. 설명에 따르면 항아리를 관으로 사용했던 옹관문화는 청동기 시대에 시작되어 삼국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성산성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비밀을 여럿 간직하고 있다. 흙으로 만든 말(토제마)과 쇠로 만든 말(철제마)은 어디에 쓰려고 만들었을까. 나무 빗, 팽이, 시루나 쇠도끼, 화살촉, 쇠스랑 같은 도구야 그 쓰임을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얼굴모양의 나무 조각품과 전신 인물상은 상상력을 동원해도 그 쓰임을 짐작하기 어렵다. 글씨가 또렷하게 남아 있는 목간이 이성산성의 얼굴을 살짝 보여주었을 뿐이다. 허리에 차는 악기 요고(腰鼓)도 아주 특별한 유물이다. 고구려 벽화에 등장하는 요고는 이성산성에서 최초로 발견되었다. 대량으로 발굴된 벼루는 이성산성이 단순한 군사시설이 아니라 종교시설 혹은 행정기관일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박물관 3층 전시실 입구에 모셔진 철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332호)은 10세기에 제작된 철불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몸은 다소 거칠지만 균형이 잡혀 있고 부처님의 얼굴은 너무나 평화롭다. 청동은입사대접과 청동원숭이모양촛대에서 고려인들의 빼어난 미의식을 엿볼 수 있다.

고려와 조선에 걸쳐 행정의 중심지였던 하남의 역사를 알려주는 전시물을 살피면 하남이 전시대를 걸쳐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세종대에 경기도관찰사영을 하남 고골(춘궁동)로 옮기고 경기도관찰사가 광주목사를 겸임했으며, 세조대에는 하남에 광주목을 두어 목사가 지방행정을 관장하다가 왜란과 호란 이후에 ‘유수 겸 수어사’ 체제로 승격되어 광주부가 되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춘궁지에 있던 광주 읍치를 남한산성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광주 관아가 위치했던 경기도 행정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통해 조선시대에 하남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2층은 조선시대 하남의 교육과 양반문화를 이해하도록 꾸며 놓았다. 선비의 생활공간인 사랑채에는 문갑과 관복장, 서안, 연상이 놓여 있다. 머리칼을 감쌌던 망건과 신분증인 호패는 물론 비녀와 경대 같은 여성들의 생활용품도 볼 수 있다. 분청사기와 백자도 시대별로 전시하고 있다. 광주에 사옹원 분원이 있었으니 도자기도 하남을 대표하는 문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향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명부인 청금록, 신분증의 역할을 하는 호패, 정3품 당상관의 고위 무관이 가슴과 등에 착용했던 쌍호흉배도 눈길을 끈다.

3층 선사실엔 사적 제269호인 하남의 ‘미사리 유적’에서 출토된 구석기부

터 청동기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미사동에서 출토된 토기들. 윤원규기자

■ 특별전 ‘한강과 전쟁’

올해는 6ㆍ25전쟁 70주년이다. 현재 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는 이를 기념한 <한강과 전쟁>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한강과 전쟁> 특별전은 삼국시대부터 6ㆍ25전쟁까지 한강을 차지하기 위해 싸운 전투를 주제로 한 전시이다. 삼국시대의 화살촉부터 임진왜란 때 사용한 총통과 광해군 10년(1610)에 편찬한 <무예제보번역속집>은 눈에 띄는 유물이다. 6ㆍ25전쟁 당시 국군과 UN군, 북한군과 중공군이 사용한 기관총과 81㎜ 박격포, 삐라 등 평시에 접하기 어려운 전쟁 관련 자료를 볼 수 있다. 등록문화재 제383호인 <미해병대원 버스비어 기증 태극기>는 일장기에 덧칠하여 만든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던 미국 해병 버스비어는 한국인에게 받은 이 태극기를 전쟁 기간 트럭에 달고 다니다가 휴전이 되자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2005년 버스비어가 하남시에 기증하여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왔던 곡절 많은 태극기이다. 박물관 관계자의 전언처럼 ‘우리나라 현대사의 질곡된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유물’이다. 이달 27일까지 예정된 특별전이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19로 현재 임시 휴관 중이다.

조선시대 이후 근현대를 거치며 하남은 수도권의 부도심으로 성장했다. 2

층 근현대실에선 옛교실 등 다양한 추억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윤원규기자

■ 하남의 역사와 미래를 담는 박물관

하남지역 유적발굴의 대부분은 박물관이 건립되기 전에 이루어졌다. 이런 까닭에 하남의 역사를 간직한 유물의 상당 부분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실정이다. 박물관은 이러한 유물을 수집하는 사업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 3기 신도시가 건설되면 하남은 40만 도시로 성장할 것인데 그때는 박물관 3개를 가진 문화도시로 성장할 것이다.

“내년에는 국가의 지원을 받아 박물관과 이성산성을 연계한 실감콘텐츠 사업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유적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당대 사람들의 모습을 첨단기술을 통해 영상으로 실감 나게 구현해내는 것입니다. 하남은 광주와 교육을 함께 진행했는데 내년부터 초등 3학년 교과서에 분리합니다. 역사인물의 발굴과 불교문화를 활용하는 사업도 적극적으로 벌일 계획입니다.”

이경석(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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