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아침] 경자년 한가위 역병

추석은 민족의 대명절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여자들을 둘로 편을 나누어 두 왕녀가 여자들을 거느리고 7월 16일부터 매일 뜰에 모여 밤늦도록 베를 짜게 했다. 8월 보름이 되면 그동안의 성적을 가려서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대접했다. 고려 시대에도 추석 명절을 쇠었으며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국가적으로 선대 왕에게 추석 차례를 지냈다.

하지만 올해 추석은 코로나 역병으로 인해서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 함께 추석 차례조차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후 1670년, 1671년에 연이어 일어난 경신 대기근은 겨울의 추위가 여름까지 이어지고 태풍과 우박, 수해 등이 한꺼번에 덮치면서 조선 인구의 5분의 1인 100만 명의 백성이 굶어 죽은 대재앙이었다.

멜버른대학 교수인 앨런 로페즈는 인터뷰에서 이제는 북반구 폭염과 코로나19로 인한 실제 사망자 수는 180만명에 가까울 수 있으며, 올 연말까지 300만명에 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역병 대재앙의 시대와 더불어 기후 위기 비상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과거 조선에는 혜민서와 활인서라는 관청이 있었다. 혜민서는 일반 백성의 진료를 담당하는 곳이었고 활인서는 연고가 없는 환자를 수용하고 역병이 돌 때 임시로 막사를 지어 환자들을 돌보았다.

어마어마한 환자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현종은 백광현을 남쪽 지방에 파견한다. 힘든 상황에서도 그는 왕족이나 고관대작들만을 진료하며 안온한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민중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고통을 위로해주고 질병을 치료했다.

오늘날 다시 그때와 같은 재난이 닥쳐오더라도, 백광현과 같은 참된 의술을 실천하는 의료인들이 최선을 다해 곳곳에서 어둠을 밝혀 주리라 믿는다.

끝으로 이번 경자년 대역병의 시대에 전 세계인들이 어려움을 겪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은 슬기롭게 대처하여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사망자 수가 적은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추석 연휴 때가 전염병 확산의 기로이므로 수백만 명의 귀향길을 자제할 때라고 본다.

안동 하회마을의 하와일록 1798년 8월 14일자에서 “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하여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정했다”고 했다. 안동 풍산의 김두흠 역시 일록에서 “나라에 천연두가 창궐하여 차례를 행하지 못하였다”라고 기록했다.

이런 난국일수록 모든 국민이 합심하여 분열하지 말고 한마음으로 나아갈 때 전 세계를 선도하는 위대한 국가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선일스님 법명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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