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수 칼럼] 철저한 조사와 살해 명령 책임자 처벌 요구해야

지난 22일 어업 지도선 공무원이었던 A씨가 북한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고 시신도 훼손되는 참혹한 사건이 벌어졌다. 인질범을 무참히 살해하는 이슬람 테러조직인 IS를 연상시킬 정도로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전시도 아닌 평시에 그것도 비무장한 상태에서 기진맥진하여 표류하는 민간인을 무참히 살해한 경우는 더더욱 없었다. 고무보트나 허술한 배로 지중해를 통해 유럽으로 향하는 불법 월경자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지중해의 거센 풍랑에 의해 어려움을 겪을 경우 인접 국가들은 이들을 구조하고 나서 자신들의 고국으로 돌려보낸다. 이것이 인륜(人倫)이자 또 정상 국가의 모습이다.

북한은 25일 이른 오전에 청와대를 수신자로 하는 통일전선부 명의의 통지문을 보내왔다. 김정은이 대단히 미안함을 전하는 내용도 있었다. 남북 관계 75년 동안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이렇게 신속하게 사과를 표명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북한의 통지문을 해석해 보면 사과의 진정성에 의문이 생긴다. 사건 조사 결과가 허점투성이고 변명으로 일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벌어진 사건에 대한 귀측의 정확한 이해를 바라고 있어 마치 한국 정부가 잘못 파악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북한 조사 결과를 보면, 대한민국 민간인이 북한을 불법 침입했고 도주할 듯하여 정장의 지시하에 10여 발 사격을 가했으며 부유물은 해상에서 소각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허술한지 몇 가지만 짚어보자. 우선, 북한은 A씨를 80미터 떨어져서 신분을 확인했다고 했다. 주변이 고요한 육지에서도 80m 떨어져 서로 말을 주고받기가 어렵다. 파도소리 때문에 바로 옆에서 말을 해도 잘 알아듣지 거리에서 탈진한 A씨에게 신분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신분이 확인될 리 만무하다.

둘째, 북한이 A씨를 발견한 것이 22일 저녁이라는 것이다. 한국 국방부는 오후 3시30분에 발견된 정황이 있다고 했다. 오후 3시30분이면 대낮이다. 훤하기 때문에 80m 떨어진 물체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은 저녁이라고 했다. 저녁이면 80m 떨어진 물체도 잘 볼 수 없고 물체의 동향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발견 시간을 일부러 조작한 것이다.

셋째, 두 발의 공포탄을 쏘니 A씨가 도주할 듯했고 무언가 몸에 뒤집어쓴 정황이 보여 40~50m 거리에서 실사격을 했다는 것이다. 민간인인 A씨가 공포탄인지 실탄인지 알 길이 없고 또 아무리 기진맥진해도 총소리에 놀라 피살되지 않으려고 부유물을 뒤집어썼을 것이다. 북한군은 군함에 타고 있고 A씨는 부유물에 의지하고 있다. A씨가 살고자 도주를 한다면 몇 미터를 하겠는가. 북한 스스로도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는지 도주할 듯한 상황이라고 했다. 기가 찰 노릇이다.

넷째, 현지 해상에서 부유물을 소각했다는 것이다. A씨 사체 소각 여부는 쏙 뺐다. 한국군이 추정한 소각 소요 시간은 40분이다. 부유물 하나 소각하는 데 40분이나 걸릴 리 만무하다. 그리고 구명조끼를 입은 A씨가 바다에 가라앉았을 리도 없다. 최악에는, 살해된 A씨가 부유물과 분리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그 사체를 유기했다는 말이 된다.

정부는 국제사회의 냉소와 비판이 두려워 서둘러 통지한 북한의 책임 회피성 조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사건 전반을 철저히 조사하여 사실을 밝혀야 한다. 북한도 그래야 한다. 북한도 사살 명령을 내린 최고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 그래야 최고 지도자의 사과를 그나마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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