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아침] 문화유산 전승으로 정체성 이어가자

20세기는 인간의 기존 사상을 완전히 거부하고 예술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린 포스트모더니즘이 탄생했다. 이성을 거부하고 합리주의를 거부하며 상대주의적이고 불확정적인 세계관을 낳았다. 지구촌화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이념이 등장한 것이다. 이시기에 우리는 서구와 다른 역사적 배경 속에서도 새로운 흐름들과 동행했고 경제성장일로를 걸어오면서 전통문화의 부재로 인한 정체성의 혼돈과 정신적 빈곤을 겪었다.

21세기 전통의 미를 논한다면 자체가 진부한 담론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글로벌리즘을 외친다 해도 철저한 자신의 정체성이 기본이 안 된다면 새 시대 새로운 문화양상의 탄생은 가치 없는 일일 것이다. 서구의 유행 사조만을 뒤쫓기 바빴던 우리의 지난 세기의 과오를 깨닫고 이제는 간과해 왔던 우리 역사의 미의식을 되찾아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12년이란 세월이 흘러도 생생한 2008년 2월의 숭례문 화재는 많은 사람들에게 참담함을 주었다. 수백 명의 관련 전문가가 참여해 전통기술과 현대과학을 동원해 복원했으나 단청의 부실시공논란으로 그 공이 사라졌다. 그 과오의 핵심은 전통기법과 재료의 부재이며 전통의 단절로 나온 결과다.

일반인에게 개방 된지도 7년이 지난 현재도 부실 부위에 대한 재시공 연구가 진행중이다.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전통소재와 기법들이 있다고 한다. 이는 누구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냉정하게 우리 문화재현장이 갖고 있는 현실적 한계성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전통복원은 지켜야 할 엄격한 자연의 법도를 지키는 일과 같다. 지킬 것이 있어 이를 위한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고 미리 면밀한 준비가 있어야 하므로 현대와 같은 빠름의 시대에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50여 년간은 산업, 기술, 사회 구조면에서 격변기였으며 우리의 의식구조와 가치관 등에도 전환을 몰아온 시기였다. 구주선진국들이 산업혁명 이래 오늘까지 겪어온 2세기 반에 걸친 ‘변화’를 일시에 주름잡아 밟아온 눈부신 기간이기도 했다.

이 시기의 인위적인 문화유산의 파괴가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를 냉철하게 살피고 반성할 시점이다.

우리는 문화유산의 최후의 상속자가 아니라 과도적 관리자의 입장에서 보존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엄격한 평가자는 더 세련된 문화적 혜안과 더 앞선 기술을 지니고 문화유산을 상속할 우리 후손과 문화재를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생각하고 있는 세계의 교양있는 지식인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될 것이다.

한경순 건국대 교수/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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