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2년 10월 27일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제노바에서 태어난 파가니니는 아버지 안토니오로부터 다섯 살 때 만돌린을, 일곱 살 때는 바이올린을 배웠다. 아침부터 밤까지 어린 아들에게 혹독하게 음악을 가르친 그의 아버지에게는 나름의 큰 야망이 있었다.
당시 북이탈리아에는 어린이에게 뛰어난 음악적 재능이 발견되는 것은 가문을 일으킬 만큼 커다란 희망이었다. 국민이 가지는 관심과 존경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아들 파가니니를 통해 명성과 부를 한꺼번에 얻으려 했던 아버지 안토니오는 그의 아들 파가니니를 다그칠 수밖에 없었고 파가니니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며 음악적으로 나날이 성장하였다.
파가니니는 여덟 살에 직접 소나타를 작곡했고 아홉 살에는 공개 무대에서 자신이 작곡한 캄파넬라 변주곡을 연주했다. 쇼팽, 슈만, 리스트 등 당대를 주름잡은 많은 음악가에게 연주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영향력을 행사했던 파가니니, 물론 그도 큰 영향을 받은 연주자가 있었다. 바로 ‘아우구스트 두라노프스키’라는 바이올리니스트다.
너무도 급속도로 음악적 성장을 이뤄나가던 파가니니. 그는 어디서나 반년이면 스승의 실력을 따라잡는 놀라운 재능을 선보였다. 그에게 어떤 뛰어난 스승의 연주법조차도 시시하게 느껴질 무렵, 순회 연주 중이던 두라노프스키가 제노바에 들렀는데 그의 연주에 파가니니는 깊은 감동을 하였다 한다. 비르투오소의 전혀 새로운 연주법, 그의 눈부신 연주는 파가니니가 한 단계 새로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훗날 파가니니가 사람들을 열광시킨 연주 효과는 대부분 이 두라노프스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파가니니에게 영향을 주었던 두라노프스키에게는 ‘비르투오소(Virtuoso)’라는 명칭이 주어졌는데, 비르투오소는 ‘덕이 있는’, ‘고결한’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17세기에 예술이나 도덕에 대해서 특별한 지식을 갖춘 탁월한 예술가나 학자에게 붙여진 말이다. 그러다 점차 기교가 매우 뛰어난 음악가, 그중에서도 피아니스트를 비롯한 기악 연주자를 대상으로 사용 된 명칭이다.
불과 열네 살에 어떤 스승의 가르침도 받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났던 소년 파가니니는, 독자적으로 바이올리니스트의 이력을 쌓기 시작한다. 열아홉이던 1901년에는 국립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임명되어 4년 동안 활동했으며 궁정 오케스트라의 독주 바이올리니스트로도 3년 동안 활동한다. 1809년부터 평생을 자유 예술가로의 삶을 살게 된 파가니니는 그때부터 전 유럽 방방곡곡을 돌며 비로소 그의 빛나는 연주를 선보이게 된다.
정승용 지휘자ㆍ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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