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대질에 욕설은 일상”
#1. 수원시의 한 구청에서 근무하는 여성 공무원 A씨는 “본 업무는 아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야간이나 주말에 종종 현장 순찰 업무에 투입된다”며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당시) 시민들에게 마스크를 쓰라거나, 일부 영업점에 집합 모임을 제한해야 한다고 안내했다가 삿대질부터 욕설까지 각양각색 일을 겪었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A씨는 “한 취객이 쓰레기봉투에 버려진 유리병을 들어 때리겠다는 시늉을 했는데 이때가 제일 무서웠다”고 언급했다. 이날 이후 구청에 보고해 순찰 업무에서 빠지게 됐다는 A씨는 “제 일이 공무원인 걸 어떡하느냐”며 “코로나19로 다 같이 힘들고 어려운 때에 혼자 힘들다고 징징댈 수도 없고 마냥 참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2. 지난 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한 인천의 한 의료원 간호사 B씨는 “동료 중에는 확진자 병동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배우자가 직장에서 퇴사를 요구받는 경우도 있었다. 코로나19 전담 간호사의 가장 큰 불안은 가족에 대한 염려”라며 울먹였다. 이어 B씨는 “일부 환자는 커피심부름, 택배, 배달 음식 등 의료와 관계없는 개인적은 요구를 하기도 한다”면서 “이런 일이 과도하고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업무에 방해가 되지만 (현 상황에선) 모든 게 연속적인 업무기 때문에 간호사들이 쉬는 시간에도 쉴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10월10일 세계 정신 건강의 날, 공무원과 의료진이 울고 있다.
코로나19로 우울감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등을 호소하는 수가 많아졌지만 이들을 돕는 공적인 심리 회복 지원책은 턱없이 미흡해 방치된 실정이다.
10일 국가트라우마센터의 코로나19 대응 의료진 상담 실적을 보면 관련 조사 응답자 319명 중 158명(49.5%ㆍ복수 응답)이 ‘신체적인 증상이 있다’고 말했다. 뒤이어 ‘우울감을 느낀다’는 사람이 132명(41.3%)이었고 ‘외상 후 스트레스가 있다’는 사람은 90명(28.2%), ‘불안하다’는 사람은 72명(22.6%)으로 나타났다.
자살 위험성이 있는 것으로 분류된 수는 9명(2.8%)으로 집계됐다. 이러한 정신건강 정도를 직종별로 비교해 보면 신체 증상, 우울, 외상 후 스트레스, 불안, 자살 위험성 등 모든 증상에서 간호사가 다른 직종보다 높았다.
그러나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이러한 의료진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한 실적은 아예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트라우마센터 소진관리 프로그램에 참여한 코로나19 대응 의료진 549명의 지역별 분포를 보면 서울 377명, 대구 121명, 경기 32명, 경남 19명 순이었다. 서울 지역 의료진 비율이 68.7%에 달하는 만큼 전국 각지에서 고르게 참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소방직 등 공무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와 정신건강증진센터는 올 초부터 의료진 외에도 공무원 등에 대한 코로나19 심리 상담을 총괄하겠다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특별한 상담은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경기도 내 운영 중인 재난심리지원센터도 이 같은 지침에 따라 코로나 관련 상담을 진행하지 않았다. 다만 5월부터는 소상공인이나 취약계층 등 특정 대상을 한정해서만 상담 창구를 열기로 하고 현재까지 심리상담 167건, 정서지지 144건을 실시했다. 이때 역시 공무원ㆍ의료진은 보건복지부와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맡기로 한 만큼 대상에서 빠지게 됐다.
이에 대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연숙 의원(국민의당)은 “K-방역 주역들에게 신체적, 정신적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정부 지원책은 너무 소홀하다”며 “심리평가 등 심리지원과 상담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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