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아침] 어머니와 노래당에 가다

바이러스 때문에 주말이면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가던 영화관이나 음악회를 못 간지가 여러 달 됐다. 다음 달에 돌아오는 어머니의 90회 생신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지 않는다면 10명 이상 모이기가 어려우므로 아들 삼형제가 각기 따로 어머니를 모시고 식사하기로 정한 마당이었다. 지난 일요일은 파란 하늘이 오랜만에 나들이에 합류한 아내와 딸아이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 같았다. 발이 편치 않으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산책로로 가려다가 한동안 닫았던 행궁이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화성행궁’으로 향했다.

정조대왕이 1789년 세워 그가 수원에 내려오면 머물던 화성행궁의 중심에는 정전 봉수당(奉壽堂)이 있었다. “수명(壽)을 받들어(奉) 빈다”는 뜻으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이곳에서 열었다고 한다. 만석꾼의 딸로 자란 우리 어머니는 한옥의 구조와 주련뿐 아니라 진찬상의 음식에도 관심이 많아 오래 구경하셨다. 송화다식도 괴어놓고, 생선전도 괴어 쌓아 각 음식의 높이가 50㎝는 넘어 보였다. 혜경궁(1735~1815)은 10세에 세자빈으로 간택됐고, 15세에 사도세자와 합방해 18세에 정조(1752~1800)를 낳았으나, 남편과는 13년간 살았을 뿐 본인이 28세 되던 해(1763), 아들이 11살일 때 남편은 뒤주에 갇혀 죽고 홀로됐다.

오른쪽에는 ‘노래당(老來堂)’이라는 건물이 있었다. 정조가 왕위에서 물러나 노후를 한가하게 지내고 싶다는 뜻에서 건립한 건물이며, 노래(老來)란 말은 ‘늙는 것은 운명에 맡기고 편안히 살면 그곳이 고향이다’라는 백거이(白居易)의 시에서 따온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한 효자 생각이 났다. 노래자(老來子)는 나이 70이 넘어서도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리려고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부렸다’는 고사이다.

이 건물의 출입문 이름은 ‘길이 젊음을 보존한다’, 또는 ‘늙기도 어렵다’는 ‘난로문(難老門)’이었다. 난로문으로 걸어 나올 때 말띠 해에 태어난 우리 딸이 꼭 60년 전에 태어난 할머니를 부축하고 나오는 모습이 무척 정겹게 보였다. 어머니는 25세 때 결혼해 39세 때 홀로돼 수절하고 아들 셋을 키웠으며, 손자 손녀 7명을 두었다. 맑은 가을날 오랜만에 가족 외출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어머니의 이번 생신을 어디 좋은 곳에서 모일지 생각해 보았다. 이왕이면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부릴 수 있는 장소로 골라야겠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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