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당직 士兵’의 자존심

변평섭 칼럼

 

광주지방법원에서는 2년 넘게 전두환 전(前)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계속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2017년 전 전(前) 대통령이 발간한 자서전에서 시작됐다.

그는 이 책에서 5ㆍ18 광주 민주항쟁 때 군 헬기가 시위대를 향해 기관총을 발사했다는 광주 조비오 신부의 주장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로 반박했는데 조비오 신부 유가족이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 죄로 전씨를 고소한 것.

조비오 신부는 1989년 5ㆍ18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와 헬기 발사를 목격했다고 진술했었다. 이후 법정에서 이 증언이 전씨 측 주장대로 거짓말인지, 아니면 정말 헬기가 기관총을 발사했는지 관계자들의 증언이 계속됐고 문제의 전일빌딩 벽에 있는 탄흔 감정까지 있었지만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그러니까 재판의 핵심은 ‘거짓말이냐, 사실이냐’이다. 조비오 신부의 유가족 측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도 ‘거짓말쟁이’라고 한 전씨의 주장이 평생을 성직자로 살아온 분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것.

이렇듯 ‘거짓말’이라는 것은 이 재판의 핵심이지만 또한 인간사회에서도 가장 기피해야 할 덕목이다. 민주주의의 어머니라고 자부하는 영국 의회에서 제일 금기시하는 것도 상대방을 공격할 때 ‘거짓말쟁이’(Liar)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다. 옛날에는 이런 단어를 쓰면 결투를 신청할 정도였다. 그만큼 영국 정치에서 ‘거짓말’은 터부시 되었고 정직을 생명처럼 여겼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윈스턴 처칠이 독일과의 전쟁으로 영국이 풍전등화(風前燈火) 같은 위기에서 수상이 되었을 때 ‘나는 나라를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바치겠다’는 의회 연설에 영국국민은 큰 용기와 희망을 품을 수 있었고 전쟁에 지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었다. 말에 거짓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 정치 지도자들의 연설에 우리 국민은 얼마나 용기와 희망을 얻고 위로를 받을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그의 아들 휴가 미복귀 의혹을 폭로한 소위 ‘당직 사병’ 현모씨(26)를 속칭 ‘이웃집 아저씨’라는 표현을 써가며 ‘가짜 뉴스’로 몰고 갔었다.

현씨는 추 장관 아들 서모씨와 같은 카투사 부대에 근무했으며, 문제의 2017년 6월25일 당직 근무를 서다 부대에 복귀하지 않은 서씨에게 부대 복귀를 독촉한 것을 폭로한 것인 데 추 장관 측은 ‘서씨는 현씨와 통화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의혹을 제기한 현씨를 거짓말쟁이로 낙인찍은 것. 현씨를 거짓말쟁이로 몰고 가는 데는 민주당 황희 의원도 가세했지만, 그는 현씨에게 사과했고 현씨도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추 장관 등은 추석 연휴까지 기다려도 사과가 없어 고발을 통해 자신이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것. ‘당직사병’ 현씨가 이렇게 굳은 결심을 한 것은 서울동부지검이 ‘서 일병 관련사건’을 불기소 처분을 했지만, 자신의 당직 근무일에 추 장관의 아들에게 부대복귀 하라는 전화를 한 사실, 그래서 추 장관의 아들로부터 최모 보좌관이 전화를 받고 지원 장교 김모 대위에게 휴가처리 여부를 문의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결국‘당직 사병’현모씨의 주장이 거짓말이 아니었음이 검찰에서 인정해 준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아(自我)의 정체성을 잃고 산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높은 데 현씨가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자 거대한 권력 앞에 섰다는 것이 정말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거짓말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게 이 가을 윤동주 시인이 읊은 청명한 서시 한 줄을 권하고 싶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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