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했다가 오랜만에 지인 같은 그 현수막을 길가에서 다시 보았다.
「실종된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 ‘실종일시 1999년 2월13일 오후 10시경’ 그 현수막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으로 내게 인사했지만 좀 겸연쩍어 하는 듯했다. 나도 그러했고 나의 반응이 이전과 달랐다. ‘아직도 찾고 있군’, 그 아버지 과유불급이 아닐까’. 집에 돌아와 어쩐지 사연이 궁금해 인터넷에 들어가 관련 기사를 드디어 읽었다. 지난 21년 동안 전국을 뒤덮을 정도로 돌린 전단에는 17세 여고생 딸을 그리워하는 ‘애비’의 심정이 쓰여 있었다. “너를 찾지 않고는 죽을 수조차 없단다. 아빠는 널 생각하면 숨 쉬고 있는 것조차 미안하단다” 근래에 읽은 그 어느 시구보다 하소연이 강렬했다. 한 번 더 읽었다. 죽음 이상을 건, 죽음도 하찮게 하는 그 무엇을 건 이런 집념과 책임감을 나는 겪은 적이 없다. 그 집념을 우선 사랑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책임감을 일단 도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제대로 된 이름은 아니며, 현애를 메우고 넘치는 도저한 사실성 정서가 함축돼 있다. ‘아 아직도 찾지 못했구나’, ‘그 아버지 참 대단하시다’가 아니었던 내가 좀 싫었고, 녹슨 대못 박힌 앙상한 가슴이 떠올랐다. 우리의 삶에는 여러 계기가 있고 그 주요한 계기는 타자와의 조우와 이별. 우리는 짧고도 긴 일생을 살면서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는데, 생이별은 특별하다. 특히 혈친과의 생이별은 더욱 그러하다. 어찌 오만 생각으로 애가 끊기고 타지 않겠는가만, 할 만큼 한 아니 그 이상을 한 그 아버지는 왜 어째서 체념하지 않는 것인가. 어떤 부처는 인간의 삶에 선악 구분 없이 인연이 개재되기에 인연을 아끼면서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우리는 그러기가 어렵고, 그러기를 거부하는 의지를 곧추세우고 난경과 고통을 기꺼이 동반하며 전진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일찍이 공자는 이런 극한을 ‘중도이폐(中道而廢)라고 했고, 카뮈는 그리스 신화 시시포스 이야기의 해당 국면에 관심을 가졌다. 가산이 풍비박산되고 아내가 저세상으로 떠났으나 딸의 심정까지 헤아리며 현수막과 전단을 만들고자 폐지를 줍는 아버지가 있다. 21년 동안 대한민국 전국을 다녀 그 길의 길이가 지구 18바퀴나 되는 나그네가 있다. ‘실종된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 우리 모두 그 아버지의 호소를 그 나그네의 호소를 한 번 더 경청하자. 우리가 모두 경청한다면 부녀는 반드시 상봉할 것이다. 그리해 갖가지 사연이 있는 지상의 모든 생이별을 위로하고, 한 줌 오염된 이데올로기에 막혀 70년을 대면하지 못하는 남북 이산가족의 연내 상봉도 기원하자. 모든 그리운 얼굴과 그리워하는 얼굴을 기리며 졸시 「달」을 그 기원의 광장에 바친다.
“뜨고 지고 뜨고 지고, 검은 밤 별 없는 밤, 뜨고 지고 뜨고 지고, 우리 살기 전에도 뜨고 지고, 우리 살은 후에도 뜨고 지고, 우리 검은 마음에도 뜨고 지고, 교교히 뜨고 지고, 고고히 뜨고 지고, 유구히 그 운회에 세상이 뜨고 지고.”
김승종 연성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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