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순 칼럼] 한국판 뉴딜, 속도가 아닌 방향이 중요하다

정부는 지난 7월14일, 2025년까지 총 160조원을 투자해 ‘디지털 뉴딜·그린 뉴딜’을 중심으로 일자리 190만개를 창출하겠다는 ‘한국판 뉴딜’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350만개 일자리 창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238만개 일자리 창출)와 유사한 사업 방식이라는 점에서 볼 때 ‘NewDeal’이라 부르기엔 과거 정부의 방안과 차별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지금의 한국판 뉴딜은 철학과 방향에 대한 충분한 사회화 과정보다는 엘리트 관료 중심의 톱다운(Top Down)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화, 자동화 등 노동절약형 기술진보에 따른 노동과 고용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 사회적 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계획은 찾아보기 어렵다. 초고령화 사회 진입과 100세 삶이 보편화되는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시대’ 도래에 따른 대응책도 미흡하다. ‘좋은 노동’과 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인구변화에 대한 대응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 혁신과 성장 동력에 초점이 맞춰진 까닭이다.

특히 기술혁신에 따른 일자리 소멸과 고용불안은 더 이상 부차적으로 다뤄져서는 안 될 절체절명의 과제다. 이를 무시한 채 과거의 경제 전략을 답습할 경우 정보통신, 스마트 인프라 등의 기술력을 확보한 대기업은 수혜를 받겠지만 대다수의 고용을 책임지는 중소기업의 일자리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질 수밖에 없다. 이미 우리는 기술진보에 의한 일자리 소멸을 지켜보고 있다. 무인 자동 물류 항만으로 추진 중에 있는 인천시와 부산시의 항만 SOC 디지털화, 스마트 해운물류가 그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불공정한 대우와 임금체계를 개혁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판 뉴딜을 통해 경제·사회·산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좋은 노동’을 유지하고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의 성패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려있는 일자리의 창출과 사각지대가 없는 사회복지제도 구축에 달려 있다. 이 모든 일은 1차적으로 저임금 노동과 고용의 불안정성을 강요받고 있는 현재의 임금체계를 합리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독일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과 독일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독일은 2012년 첨단기술전략인 ‘Industry 4.0’을 발표하였으며, 궁극적인 목표로 기존 공장자동화(Factory Automation, FA)를 넘어선 전 국가의 스마트 공장화(Smart Factory)를 선언했다. 이와 함께 독일정부는 가속되는 디지털화 과정에서 무엇보다 먼저 ‘좋은 노동’의 유지와 강화를 고민했다. 광범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미래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했고,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노사정이 함께 법체계,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그리고 그 합의 결과를 <노동 4.0 백서>에 담아 발간하는 등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다. 하지만 기술 혁신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한국판 뉴딜사업은 지금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기술 혁신과 노동복지정책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사회구성원의 공동의 비전이 빠진 뉴딜사업은 한계를 들어 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또 다시 과거 압축개발성정시대처럼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된다.

오현순 공공의제연구소 오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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