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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 무형의 친일잔재와 새로운 가치
정치 생활 속,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

[생활 속,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 무형의 친일잔재와 새로운 가치

일제가 심어놓은 열등의식패배주의…...우리민족 의식까지 갉아먹다
조정래 작가 친일파 발언 논란… 친일의 합리화 논리 여전
친일파들 법조·軍 등 다양한 분야서 日 권력 기생하며 활동
한글 폐지·일본식 개명까지 강요, 민족자존 의지 원천 봉쇄
‘과정보단 결과’… 순간 이익 추구하는 기회주의 의식 남겨놔
젊은층, 뛰어난 문화적 우수성으로 새 정신적 가치 모색 기대

■ 조정래 작가의 친일파 논란

최근 느닷없이 화제가 된 인물이 조정래 작가였다. 대하소설 『태백산맥』과 『아리랑』의 작가의 등단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친일파 언급 때문이었다. 그동안 질곡의 한국 근현대사를 뜨거운 민중적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수많은 독자로부터 역사 이야기의 사표로 칭송되고 있는 원로작가의 발언이었기에 파급력이 컸다. ‘일본에 유학을 다녀오면 다 친일파가 된다’고 한 그의 발언은 다음 날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고 조 작가를 비판하는 말과 글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비난에 앞장서는 자들 대부분 일본에 대해서는 무언가 관계가 있는 세력이나 개인들이었다. 과거 일제 강점기에 친일의 부역을 했거나 아니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본에 경제적이든 학문적이든 아니면 또 다른 이유 등으로 빚을 지고 있는 자들이 그들이었다. 왜 그럴까? 무엇이 그들을 이처럼 반발하게 했는가?

실제로 조정래 작가의 발언은 앞뒤의 맥락을 잘라서 이해하면 분명 문제가 있는 발언이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일본을 의식해야만 하는 한 논객은 그렇다면 일본유학을 한 대통령의 딸도 친일파냐며 비판할 정도였다. 그러나 조 작가의 발언은 거두절미하고 이해하는 것은 무식한 까닭이거나 아니면 의도적인 왜곡일 수밖에 없다. 조정래 씨는 역사적 이야기 작가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발언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여야 함은 당연하다. 더욱이 그날은 기자들의 질문이 일제 강점기 시절을 다룬 『아리랑』에 대한 대표적인 친일단체인 ‘이승만학당’의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비판에 대한 질문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당연히 조 작가는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일본유학을 다녀온 친일파들이자 민족반역자들이다”라고 해석해야 한다. 알려진대로 그의 아버지 역시 일본 유학파였고 그 역시 무비판적인 친일이 아닌 다른 나라의 문화처럼 일본의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번 사태에서 분명히 드러난 사실은 우리 사회는 아직도 친일의 문제가 거론되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원인은 해방 이후 당연히 청산되었어야 할 친일청산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제재나 반성도 없이 살아남은 그들에 의한 조직적이고 또 치밀한 친일의 합리화 논리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친일잔재

친일잔재란 제국주의 일본이 35년간에 걸친 식민통치 기간에 우리 땅에 남겨놓은 모든 형태의 부정적 유산을 말한다. 여기에는 건축조형물 형태나 제도, 형식 등의 유형의 형태로 남아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우리들의 정신세계 즉, 의식과 감정 그리고 인식에 남아있는 무형의 유산들이다. 이들 무형의 친일잔재는 부지불식간에 우리들의 의식세계를 지배하면서 우리 사회의 암적 존재로 해를 끼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우리 민족에게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일관된 의도 아래 장기간에 걸쳐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강요하였다. 더욱이 대륙으로의 침략 야욕을 가지고 있는 일본은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조선지배를 영속화하기 위해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각 부문은 물론 민중의 삶 깊숙이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는 논리를 주입시키고 이를 구조화하고자 기도했다. 즉 일제는 자신들은 우등민족이고 우리 민족은 열등민족으로 격하시키기 위한 노예의식과 패배주의를 만연시킴으로써 민족자존의 의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그리고 폭압적인 관료제와 권위주의적인 법령체계를 채택하고 헌병ㆍ경찰 통치를 통해 우리 민족을 순응시키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일제는 우리 국토를 일본화시키는 것 못지않게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스스로 열등민족이라는 자기비하를 심어주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식민사관의 주입이었다. 우리는 아주 빈약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기에 선진적 문화국가인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식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에 일본의 지배를 받는 이유도 조선의 망국적인 사색당쟁 때문이었다는 단순 논리를 주입하였다. 위대한 한글문자는 폐지되었고 이름마저 일본식으로 개명할 것을 강요하였다. 한국인은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이류 민족이라는 인식을 식민지 백성의 뇌리에 심어주는 것이었다.

■ 정신적 패배의식과 기회주의

우리들의 의식에 내재되어 있는 권위주의에 대한 동경(한국인에게는 그저 강하게 몰아붙이는 지도자가 필요해), 쉽게 자포자기하는 모습(한국인은 아무리 노력해도 일본에, 미국에는 못 쫓아가), 열등의식(그저 한국인은 때려야 말을 들어)과 같은 패배주의 정신이 심어진 것도 일제 강점기였다. 이런 의식은 지금도 남아 우리 주변에 있다. 어쩌면 친일잔재의 가장 큰 폐는 이렇게 우리 민족의 정신을 좀먹고 있는 패배의식일 것이다.

친일 또는 친일파라는 말은 우리가 일본에 나라를 강제로 잃기 전부터 쓰였던 말이다. 친일의 친할 친(親)자는 부모 자식의 사이처럼 볼꼴 못 볼 꼴을 다 드려다 본다는 친숙한 의미의 글자이다. 그러니까 친일이라는 말은 은연중에 일본을 어버이처럼 친하게 여기고 섬긴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한일병탄이 되기 전에 친일파란 말은 주로 이완용 같은 고위 관료들 또는 말단 공무원 중에 일본을 핑계로 민중을 수탈하는 자들(친일 연구가인 임종국 선생은 이들을 직업적 친일파라고 규정) 그리고 을사늑약부터 노골적으로 일본을 위해 일을 해 오던 일진회 관련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일본은 어버이처럼 섬겨야 한다고 외쳤던 부류들이다.

친일파들은 일제 강점기에 눈부신(?) 활약을 했다. 그들은 관계, 법조계, 군, 경찰 그리고 학계와 문화예술계 등 분야를 막론하고 일본의 권력자들에게 기생하면서 활동했다. 순간순간의 이익을 좇아가는 기회주의적 속성은 이때부터 성공의 지름길이 되었다. 모든 것의 기준이 나의 이익에 매몰되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들의 기회주의적 행동의 이면에는 늘 한국인은 열등민족이라는 패배주의가 있었다. 아직도 우리가 친일잔재를 논해야 한다는 것은 그들의 작업은 성공했다는 의미이다. 아니 그들은 아직도 살아서 우리들의 의식에 여전히 패배주의 의식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니 너도 기회를 잘 잡으라고 하면서.

■ 친일 인맥으로 유지되는 친일잔재

1948년 제헌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을 법률 제3호로서 제정하였다. 반민법은 제헌헌법 제101조에 의해 국회에 반민법 기초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민의를 수렴하고, 많은 논의 끝에 제정되었다. 반민법은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인 해방정국 시기에 제정되었지만 미군정의 반대로 보류되었다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국회에서 제정한 것이다.

그러나 왜적에게 나라를 팔고,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을 탄압하고, 일제에 협력한 악질 친일파ㆍ민족반역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반민법은 곡절 끝에 이내 무산되고 말았다. 살아남은 친일파들은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했다. 관료출신들은 법과 제도로, 군과 경찰은 일제 강점기 시절 배운 기술을 신생국가에 적용하면서, 경제인은 자수성가로 포장하고, 언론인은 시대상을 들며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로, 학자는 강단에서 논리적으로, 문화예술인은 그들의 무대에서 작가는 작품으로 승부를 본다며 끝없이 친일잔재의 청산을 방해하고 또 그 의식이 존속되도록 노력하였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정의가 실종된 이유가 그 결과였다. 열심히 노력해서 얻는 지식과 부 그리고 지위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취한 결과만이 목적이 되는 사회. 불로소득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오히려 능력으로 포장되는 사회. 서울 강남 지역의 아파트값이 어느 날 갑자기 올라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비정상적인 사회, 나의 땀과 노력이 아닌 눈치와 권력의 향배를 따라서 움직이는 술수가 존중되는 사회. 과정보다 결과만이 중시되는 사회. 그리고 억울하면 너도 출세하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이 회자하는 사회. 모두가 무형의 친일잔재 결과들이다.

■ 새로운 정신적 가치가 필요하다

35년간에 걸친 세계사상 유례를 보기 힘든 가혹한 식민통치를 받은 우리 민족은 실로 엄청난 인적 물질적 피해를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가시적 피해도 컸지만 보다 깊은 상처가 남은 곳은 민족의 정신세계였다. 물질적 피해는 쉽게 복구할 수 있지만 한번 훼손된 정신세계를 온전히 치유하고 복원하는 데는 지속적인 노력과 함께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무형의 친일잔재가 눈에 보이는 친일잔재보다도 훨씬 무섭고 질긴 것이다.

일본이 심어놓은 세력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주요세력으로 남아있는 한 그들의 계획은 계속될 것이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자신들의 할아버지, 아버지의 행적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더욱 합리화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자신들이 세워 놓은 가치를 최고의 덕목으로 만들고 있다. 그들의 반성과 참회의 길로 들어서기에는 너무 많이 나갔는지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직 늦지 않았다. 미래세대인 청소년층의 친일의식은 매우 약화되었다. 오히려 극일의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정치적으로 여전히 전근대적인 수준의 일본에 비해 압도적인 민주의식을 갖춘 젊은층이 이제는 경제면에서도 일본에 전혀 밀릴 것이 없다고 자신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는 최근의 영화 기생충이나 BTS 경우처럼 문화적 우수함이 넘치고 있다. 역시 미래세대는 과거세대보다 진보하고 있다. 앞으로 기성세대의 역할은 이들 젊은세대에게 친일잔재가 아닌 새로운 정신적 가치를 세워주는 일이 될 것이다.

임형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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