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배기 생명과 맞바꾼 ‘주차장법’…무관심 속 달라진 것 없는 ‘경사 주차장’

사진=조주현기자
27일 안양시 만안구의 문예노상공영주차장이 주차장법 개정안 시행에도 고임목 등 미끄럼 방지 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상태로 나타났다. 조주현기자

네 살배기의 생명을 앗아간 경사 주차장에 안전설비를 구축하도록 하는 법이 시행됐지만, 지방자치단체는 손을 놓고 있다.

27일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야탑동제1공영주차장. 중앙 통로 부근의 경사도는 6%였지만 이곳은 경사 주차장으로 집계조차 되지 않았다. 당연히 미끄럼 방지 시설이나 고임목은 없었고 경사로 바로 옆엔 시내버스와 2.5t 물류트럭 등 대형차량이 아슬아슬하게 주차한 모습이었다. 앞서 2017년 10월 과천의 한 놀이공원 주차장에서 미끄러진 차량에 치여 당시 4세였던 아동이 숨지는 사고가 벌어졌는데, 해당 주차장의 경사도는 불과 2%였다.

조치를 취해도 생색내기에 그쳤다. 경사 주차장으로 집계된 운중동공영주차장엔 이달 초 고임목 28개가 비치됐지만, 이날 70면을 가득 채운 차량 가운데 고임목을 괸 차량은 단 1대도 없었다. 이곳 관리자에 따르면 비치된 지 2주가 넘도록 고임목을 사용한 운전자는 아예 없었다. 고임목이 담긴 제설함을 열어보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고임목들이 빳빳한 상자 속에 처음 포장된 상태 그대로 있었다.

관리 주체인 성남도시개발공사 측은 현장을 확인해 경사 주차장 포함 여부를 재검토하고 고임목 사용에 대해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겠다고 해명했다.

27일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운중동공영주차장은 이달 초 고임목이 비치됐지만, 2주가 넘도록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장희준기자
27일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운중동공영주차장은 이달 초 고임목이 비치됐지만, 2주가 넘도록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장희준기자

안양시 만안구의 문예노상공영주차장은 고임목조차 비치되지 않았다. 총 380여m에 걸친 주차구간을 20m 단위로 나눠 측정한 결과 평균 경사도는 7%로 나타났다. 실제로 차량을 세운 뒤 기어를 중립에 놓자 금세 바퀴가 움직였다. 더구나 주변에 주택가가 밀집해 어린이 등 보행자가 많았지만, 안양도시공사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56면 중 37면을 채운 운전자들 역시 아무도 고임목을 괴거나 핸들을 꺾어놓지 않았다.

안산시 단원구 와동136호공영주차장은 주차면을 초과해 출입구 경사로까지 차량이 들어섰는데 해당 지점의 최대 경사도는 6%였다. 가장 평평한 지점의 경사도 역시 4%로 측정됐지만, 단원구청은 예산 확보가 어렵고 민원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법이 지정하는 미끄럼 방지 시설을 아직도 설치하지 않았다.

이날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7년 10월 네 살배기 하준이 사망 사고를 계기로 지난해 주차장법 개정이 이뤄졌고 올해 6월25일 개정안이 시행됐다. 이에 따라 모든 경사 주차장은 12월26일까지 고임목 등 미끄럼 방지 시설을 설치ㆍ비치해야 한다. 특히 공영주차장의 경우 국토부에서 10월까지 조치를 완료하라는 별도 지침을 내린 바 있다.

지난달 기준 경기도내 경사 주차장은 193곳으로, 99%에 달하는 191곳이 지자체가 관리하는 공영주차장이다. 그만큼 지자체의 적극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하지만, 공영주차장 191곳 중 관련 조치가 완료된 건 54곳(28.3%)에 불과하다. 국토부가 권고한 기한까지 4일 밖에 남지 않았지만, 경기지역 지자체들은 강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손을 놓은 모양새다.

국토부 관계자는 “달라진 제도가 현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해당 지역을 꼼꼼히 점검하겠다”며 “운전자도 반드시 주차 브레이크를 하고 핸들을 가장자리로 돌려놓는 등 안전 조치에 협조해달라”고 밝혔다.

27일 안양시 만안구의 문예노상공영주차장이 주차장법 개정안 시행에도 고임목 등 미끄럼 방지 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상태로 나타났다. 장희준기자
27일 안양시 만안구의 문예노상공영주차장이 주차장법 개정안 시행에도 고임목 등 미끄럼 방지 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상태로 나타났다. 장희준기자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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