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경청(傾聽)의 미덕

올해 초 우연히 아역배우 김강훈이 출연한 공익광고를 보았다. 30초 분량의 짧은 영상이었으나, 그 내용만큼은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그 영상물을 통해 오늘날 다양한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상황은 어느 직장의 사무실에서 벌어진다. 부하 직원은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를 상급 직원에게 보여주며 말을 들어달라고 사정하지만, 그 상급자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내가 너보다 더 잘 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상황은 엄마와 딸 사이의 대화이다. 엄마는 딸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으나, 딸은 엄마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 회피한다. 딸에게 엄마의 말은 잔소리였기 때문이다. 엄마의 말을 듣기 싫었던 딸은 끝내 헤드폰을 머리에 끼고 엄마를 외면한다. 공익광고 영상물 속 진행자였던 김강훈 군은 이러한 두 가지 상황을 다음과 같은 멘트로 정리한다. “세상 문제 대부분은 잘 들으면 풀 수 있는 문제. / 말이 통하는 사회, 듣기에서 시작됩니다.”

현대 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부와 물질을 추구하는 현대의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양쪽으로 갈라 한쪽에는 ‘부(富)’라는 표지판 아래에 다른 한쪽에는 ‘빈’(貧)이라는 표지판 아래에 모아놓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은 눈앞에 마주한 생계(生計)에 대한 걱정으로 시선을 돌려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반면에 부유한 이들은 반대편에 서 있는 이들, 곧 자신보다 어려운 이들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들의 눈은 물질적 부유함으로 가려졌다. 설상가상으로 자본주의 발달은 이기적 개인주의를 종용하였다.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타인은 존중과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일 뿐이다.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경쟁 풍토를 겪으며 홀로 강하게 살아남으려는 방법은 배웠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공동선의 가치보다 개인의 가치가 우선하는 현대 사회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고자 가장 필요한 것을 한가지 꼽는다면 ‘경청(傾聽)’일 것이다. 타인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의 말을 들을 때, 사람 사이의 ‘관계’는 시작한다. 듣지 않고서는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없고, 그와 공감할 수 없다. 타인과의 공감이 없다면 배려 또한 있을 수 없다. 종교적 절대자와의 관계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절대자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면, 먼저 절대자에게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우리는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한다. 상대방이 말할 기회를 주기 전에 내가 먼저 말을 하기 시작한다. 아니 어쩌면 말하기를 좋아한다기보다 듣기를 싫어하는 것일까? 고대 이스라엘의 현인(賢人)은 말함을 좋아하고 들음에 미숙한 현대인에게 경청(傾聽)이라는 미덕을 가르쳐주고 있다. “인간은 하나의 입과 두 개의 귀가 있다. 말하는 것보다 두 배로 들으라.”

정진만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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