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져도 카트로 배송하다 보면 금방 온몸이 땀 범벅입니다.”
14일 안산시 단원구 2천여가구의 A 아파트에서 만난 택배기사 L씨(58)는 아파트 단지 옆 도로에 차량을 불법 정차한 채 비상등을 키고 택배물량을 내렸다. 입주된지 5년이 채 되지 않은 신축 A 아파트는 단지 내 지상에 차량 출입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L씨는 짐칸에서 꺼낸 택배를 카트에 쌓고 아파트 단지 옆 출구로 끌고 들어갔다. 카트를 끌고 한 동, 한 동 돌면서 집마다 택배를 전해야 했다. 이날 L씨에게 주어진 택배는 101개. A 아파트는 총 11개 동으로 L씨는 손수레를 끌고 차량과 각 동을 십여번 오가야만 한다. L씨는 이날 3시간30분가량 걸려 배송을 완료했다. 옛날에 지어져 차량 진입이 자유로운 비슷한 규모의 아파트와 비교할 때 1시간30분은 족히 더 걸리는 셈이라고 L씨는 설명했다.
코로나19 이후 배송 물량 증가로 택배기사들의 과로사가 잇따르는 가운데 단지 내 차량 진입을 막는 아파트들이 늘면서 택배기사들이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상당수의 신축 아파트가 ‘차 없는 단지’를 내세운 공원형 아파트로 지어지는 탓인데, 2년전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에서 빚어진 마찰이 아직도 해결책을 못찾고 있다.
택배차량 단지 내 진입 거부 문제는 지난 2018년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에서 처음 불거졌다. 당시엔 택배기사들과 입주민이 충돌, 배송을 거부한 택배기사들이 주차장에 택배를 잔뜩 쌓아두기도 했다.
정부는 어르신 배달원들이 택배업체가 지하주차장으로 배송한 물품을 분류하고 각 세대로 재배송하도록 하는 ‘실버택배’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했지만, 세금 지원 논란 속 백지화됐다. 또 아파트 지하주차장 높이를 2.7m 이상으로 짓도록 하는 법이 시행 중이지만, 이미 준공된 아파트 주차장 층고를 개선하기는 불가능하다.
이처럼 2년이 흐른 현재까지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으면서 택배업계의 어려움이 더하고 있다.
입주민들과 택배기사들은 서로 책임을 묻기보다 정부와 지자체의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A 아파트의 주민 J씨(35)는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사고발생률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좋지만, 택배기사분들의 어려움도 이해가 된다”며 “정부나 지자체에서 효율적인 대책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국택배연대노조 관계자는 “국토부나 지자체가 앞장서서 같은 갈등이 재발하지 않도록 방안을 제시해주길 기다리고 있다”며 “특히 아파트별로 유형이 조금씩 다르니 각 아파트 단지에 맞는 맞춤형 대안을 마련해달라”고 했다. 김해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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