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박지선이 36살,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연예계는 물론 많은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다. 13년 동안 개그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아온 박지선은 그의 밝고 활달한 모습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사람들 눈에 감추어진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평상시에도 화장을 못 할 피부질환으로 고통을 겪은 것 때문일까.
혹여 그 얼굴을 두고 무책임하게 쏘아 댄 악플 때문일까. 틀림없이 심각한 고민이 있었을 텐데 우리는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는 많다. 2010년 10월 ‘행복 전도사’라는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TV를 통해 또는 지방순회 강연을 통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설파하던 최윤희씨 부부의 자살도 그 한 예다. ‘행복 전도사’가 불행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는 오랫동안 여러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실 한 사람의 인생이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투명하게 비쳐 질 수는 없다.
지난 11월 초 세종시에 있는 어린이집 교사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A씨는 아동 학대 누명을 쓰고 해당 아동 가족들로부터 폭언과 모욕,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그 가족들을 처벌해 달라는 국민 청원이 35만 명을 넘었다. 교육 당국은 A씨와 같이 부당하게 인권유린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방지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청와대 국민청원이 35만 명을 넘는다 해도, 그리고 교육 당국이 사후 대책을 내놓는다 해서 죽은 A씨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참으로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자살 공화국’이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도 자살하고, 서울시장을 지낸 사람, 예비역 장군, 검사, 국회의원, 대기업 회장, 심지어 가난에 시달리다 일가족 모두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가슴 아픈 사연이 너무 많다. 이렇게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2018년 통계로 1만3천670명, 매일 37.5명이 죽음을 택하는데 OECD 36개국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기록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참 많은 것 같아도 지난해 사망자가 3천349명, 자살로 목숨을 잃는 것의 30%도 안 된다. 그런데도 교통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하면 큰 뉴스가 되는데 자살은 그렇지 않다. 일종의 불감증 때문일까. 정말 코로나19 보다 무서운 것이 자살이다. 그렇게 코로나로 온 나라가 매일 같이 떠들썩해도 이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자살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일본 역시 무리한 경쟁과 스트레스로 가족이 해체되고 이에 따른 고독사, 자살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었다. 그러다 2011년 사상 최악의 쓰나미와 대지진을 겪으면서 슬픔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이웃을 위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다. 이웃과 슬픔을 공유하고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회.
우리도 그동안 산업화의 가파른 길을 치열하게 달려오느라 이웃과 슬픔을 공유하지 못했고 함께 눈물을 닦아 주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의 수난을 겪으면서 죽음 직전의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찾아 손을 잡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삶의 용기를 주어야 한다. 60~80%의 자살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지목되는 우울증에 걸려도 치료를 받는 경우는 1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증상을 끌어안고 산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 체면의식 때문이다. ‘국민 질병’으로 지적되는 우울증 치료를 위해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노력도 그래서 필요하다 하겠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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