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의 그림자…“취약계층 의료공백 심화”

#1. HIV감염인 A씨는 최근 일터에서 기계를 만지다 엄지손가락을 다쳐 봉합해야만 했다. 급한 대로 전화를 돌려 인근 병원에 치료 여부를 묻자 대부분이 “가능하니 당장 오라”고 답했다. 하지만 A씨가 HIV감염 사실을 밝히자 병원들이 태도를 바꿨다. 코로나19로 응급실 사용이 어렵다며 진료를 거부한 것이다. 사고 당일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14시간 동안 A씨는 어떠한 치료도 받지 못했다.

#2. 경기도에서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인권활동가 B씨는 평소 의료 지원에 어려움을 겪었다. 통역과 비용 때문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대부분 무료 진료소를 이용하거나, 등록 이주노동자의 아이디를 빌려 병원을 찾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무료 진료소가 문을 닫고 공공ㆍ민간병원 이용도 제한되면서 이주노동자들은 아파도 고통을 참을 수밖에 없다. 특히 언어적 문제로 소통까지 안 되면 ‘비대면’으로 돕는 데 한계가 있어 B씨의 한숨이 한층 더 깊어졌다.

‘K-방역’의 그림자 뒤 취약계층 의료공백이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산인권센터 등 11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코로나19의료공백인권실태조사단은 최근 5개월간 국내 의료공백 인권실태 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25일 발표했다.

조사단은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국내 공공의료체계가 감염병 긴급 대응에 무게 중심을 두고, 그 역효과로 공공병원을 이용하던 취약계층이 치료ㆍ진료 시기를 놓치는 공백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피해 사례는 의료정보를 전달받지 못하는 부분부터 강제로 병실을 비워야만 하는 부분까지 다양했다. 주로 홀몸 노인, 노숙인, 이주노동자, 기존질환자, 쪽방촌 주민 등이 대상이다.

보고서에서 조사단은 지역별 119 안전신고센터가 제각각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119가 어느 공공병원이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는지, 지역 내 민간병원이 몇 시까지 일반 환자 진료를 보는지 등 정보를 몰라 환자를 떠돌게 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공공병상 수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인구당 병상 수를 비교하면 OECD 국가는 평균 1천명당 3.0개의 공공병상을 확보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1.3개로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조사에 참여한 최규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건강과대안 팀장은 “국내 병상의 90% 이상은 민간의료기관이 가지고 있는데 현재 코로나 환자 중 96%가 공공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는다. 공공의료서비스를 받던 취약계층이 방치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는 방역당국이 민간의료서비스를 전혀 컨트롤하지 못하는 의미이므로 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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