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Hush’와 ‘허쉬’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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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는 영국 출신 록밴드들의 전성시대였다. 베이비부머(Baby Boomer)들의 젊었던 시절 BTS였다. 짙은 보라색이라는 뜻의 딥퍼플(Deep Purple)도 이 가운데 하나였다. 제1기 멤버 중 보컬리스트인 로드 에번스(Rod Evans)의 목소리가 매혹적이었다. 그들의 첫 앨범인 ‘Shades of Deep Purple’은 번역하면 ’짙은 보라색의 그늘’이었다. 앨범 제목부터 형이상학적이고 서정적이었다.

▶1969년 발매된 이 앨범 수록곡 가운데 백미(白眉)는 ‘허쉬(Hush)’였다. 경쾌한 하드록 비트에 ‘허쉬’라는 후렴이 인상적이었다. 로드 에번스와 베이시스트 닉 심퍼(Nick Simper)의 호흡은 전율을 느끼게 했다. 사랑하는 연인을 향한 의성어인 ‘허쉬’는 기성사회에 대한 반항이었다. 록 정신이 저항이었기 때문이다.

▶영한사전에서 ‘Hush’를 찾으면 ‘쉿, 조용히 해’라는 의미의 의성어 성격이 짙다. ‘울지 마’ 등의 뜻도 담겼다. 동사로는 ‘조용히 시키다’, 또는 ‘그만 울게 하다’ 등의 의미도 있다. 결국, 딥퍼플의 명곡 ‘Hush’에는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연정을 포기해야만 하는 아픔이 담겼다.

▶최근 종편을 통해 동명의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월급쟁이 기자, 단순한 직장인 기자들의 현장을 그리고 있다. 첫회에서 면접관에게 인턴기자 지망생인 여성 주인공이 “밥은 펜보다 강하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독립운동을 하듯 기자생활을 했던 필자 같은 세대에게는 요즘 표현을 빌리면 ‘깜놀’이다.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하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경천동지(驚天動地)하듯 변해도 그러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올곧은 기자정신(記者精神)이다. 극 중 술자리에서 고참 기자의 자조(自嘲)적인 대사가 그랬다. “기사는 기자들이 쓰는 거야. 기자도 아닌데 뭔 기사를 써?” 여성 주인공이 응수한다. “기사는 정확하게 팩트로 써야 하는 게 아닙니까?” 취중진담(醉中眞談)인가. 극 중 내레이터는 “그들이 말하는 진실은 늘 침묵이라는 그릇에 담겨 있었다”고 되뇐다. 비겁한 침묵으로 일관하는 기자들에게 보내는 경고는 아닐까. 딥퍼플의 아픔을 뜻하는 ‘Hush’와 침묵을 의미하는 드라마 ‘허쉬’가 오버랩됐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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