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직업은 개인이 선택하는 것으로 강제되지 않는다. 직업 선택이 개인의 자유의사에 맡겨진 상황에서, 병역의 의무를 제외한 그 어떤 직업도 희생과 봉사가 따르니 특별한 혜택을 부여받아야 한다고 요구할 수 없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도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수행하는 것으로,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일도, 많은 이가 꺼리는 3D 업종도 마찬가지이다. 선호도는 있을지언정 가치 없는 직업은 없다.
국민이 지배당하는 시대에는 지배 조직이 담당하는 일을 일반인의 일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공무로 여겨, 국가가 예우하며 애국으로마저 치부해 왔다. 국가를 위해 애국하는 직업이 따로 규정되어 법으로 보장된 계급, 신분 사회였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만인이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로 직업에 귀천을 두지 않는다. 국민이 수행하는 모든 일은 사회 기여나 애국 면에서 같은 선상에서 움직인다.
장관, 국회의원, 법조인, 교직자, 성직자 등이 가져야 할 도덕적 양심도 일반 국민과 같으면 된다. 청문회에 오르는 자보다 나의 도덕적 양심이 낮아도 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직종에 관계없이 강자든 약자든, 성년이든 미성년이든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에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위정자나 고위공직자의 도덕성이 높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애국하며 가치 있는 직업이 따로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자신을 희생하며 살다 국립묘지에라도 가야 할 고된 직업인이 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달리 행복이 있는데 이를 마다하고 희생과 봉사가 따르는 일을 선택한다 해도,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이라면 그에 애국의 가치를 들이댈 이유는 없다.
국가의 독립이나 전쟁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국민 모두 두고두고 그 뜻을 기리며 감사해야 하는 애국자가 있었다. 지금은 시대 상황이 다르다.
애국하는 직업이 따로 있다는 생각은 시대의 변화를 외면한 고루한 사고이다. 애국의 형태도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으로, 이미 애국은 국민 개개인이 보이는 행위의 결과로 규정해야지 직업의 종류로 규정할 수 없는 시대이다. 애국자는 있어도 애국하는 직업은 없다.
한 장군의 국립묘지 안장에 찬반여론이 많았는데, 이미 장례문화도 바뀌었고, 직종별 차별도 해소함이 마땅할 터, 제도 유지가 필요하다면 희생과 봉사가 현격하여 이를 기릴 필요가 있는 개인의 경우로 한정함이 옳아 보인다. 연금이나 기타 후생 복지 등의 국가가 행하는 어떤 제도에도 특별한 계층을 두는 것은 공정사회를 헤칠 수 있어 개선해 감이 시대의 요구일 것이다.
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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