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에 누명 벗은 윤성여씨 "모든 재판이 공정히 진행 되길"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씨(53)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누명을 벗게 됐다.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박정제)는 17일 열린 이 사건 재심 선고 공판에서 “과거 수사기관의 부실 행위로 잘못된 판결이 나왔다”며 윤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경찰자백 진술은 불법 체포ㆍ감금 상태에서 가혹행위로 이뤄져 임의성이 없고, 적법절차에 따라 작성되지 않아 증거능력이 없다”며 “경찰 및 검찰, 재심 전 1심 법정에서의 피고인의 자백은 피고인의 신체상태, 범행현장의 객관적 상황 및 피해자에 대한 부검감정서 등 다른 증거들과 모순ㆍ저촉돼 신빙성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이춘재의 자백 진술은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합리성을 띠고 있다”며 “당시 범행현장이나 피해자 사체의 상태 등 객관적인 증거들과도 부합해 그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된다”고 부연했다.

이례적으로 재판부는 “오랜 기간 옥고를 치르면서 정신적ㆍ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을 피고인에게 사법부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 사건 재심판결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피고인의 명예 회복에 보탬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피고인은 무죄”라는 주문을 낭독하자 재판 전 과정을 도운 박준영 변호사가 가장 먼저 일어나 “박수를 쳐달라”고 요청했고, 방청석에서는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무죄 판결을 받은 윤씨는 법정을 나서며 “앞으로 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모든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앞서 윤씨는 지난 1988년 9월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자택에서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박모양(당시 13세) 사건인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진범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지난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올해 1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살인자 누명을 벗게 된 윤씨는 국가를 상대로 형사보상과 국가배상청구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윤씨 측 변호인인 법무법인 다산의 김출진 변호사는 “윤씨 스스로 당시 과오를 범한 당사자들을 용서한다고 하지만 법적으로 책임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며 “향후 국가 등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이춘재의 자백사건이 있어 재심이 가능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당사자가 옥살이를 버텨 살아나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윤씨를 도와준 박종덕 교도관과 나호견 뷰티플라이프 교화복지회 이사장이 있어 윤성여씨가 살 수 있었다”고 밝혔다.

김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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