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윤성여 재심 판사, ‘사과 말씀드린다’...사법부 사과는 이럴 때 하는 것이다

억울한 범인, 윤성여씨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수원지법 형사 12부가 17일 윤씨에 내린 재심 결정이다. 재판부는 “과거 수사기관의 부실 행위로 잘못된 판결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판결을 선고하면서 재판부가 곁들인 사과가 눈길을 끈다. “오랜 기간 옥고를 거치며 정신적·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받은 피고인에게 사법부 구성원 일원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 선고가 피고인의 명예회복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윤씨는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에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옥살이를 했다. 지난해 이춘재가 죄를 자백하면서 재심을 시작했고 이날 무죄를 받았다. 뒤늦게 알려진 윤씨에 대한 경찰 수사는 끔찍한 강압수사의 전형이었다. 수면 방해, 폭행 고문, 진술 강요가 있었다. 검찰의 보강 수사 단계에서도 경찰 강압 수사 정황은 지적되지 않았다. 법원 역시 윤씨의 계속된 탄원에도 불구하고 최초 경찰 조서를 인정해 무기 징역까지 확정했다.

이날 재판부는 시공간을 초월해 사법부의 책임을 반성하고 사과했다. ‘사법부 구성원 일원’이라는 표현으로 책임의 존재를 확인했다. 올 초에도 비슷한 사과가 있었다. 이른바 ‘낙동강 살인 사건’의 범인에 대한 재심이었다. 21년을 복역한 최모, 장모씨에게 재심 재판부가 사과했다. 사과가 주는 울림은 윤씨 사건 경우가 훨씬 크다. 그만큼 이춘재 연쇄 살인사건이 희대의 사건이었고, 윤씨의 억울함은 국민의 관심을 받아왔다.

같은 사과, 다른 느낌이 있다. 2018년 김명수 대법원장이 했던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과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특정 성향이 있는 판사들을 관리했다는 사건이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큰 상처를 준 것에 대하여 대법원장으로서 마음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모든 국민이 공감하는 사과였는지는 의문이다. 정치적인 판단ㆍ이념적 기준에 따라 달리 보는 해석은 지금도 여전하다.

수원지법 형사 12부의 이번 사과는 그와 다르다. 법원 판결 오류로 피해를 당한 당사자 앞에 재심 재판부가 고개를 숙인 것이다. 세상 사람 누가 이런 사과에 이견을 달겠나. 재판 전 윤씨는 ‘지나간 세월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해 왔다. 그래도, 재판부의 진심 어린 이번 사과에 위로가 됐을 것이다. 돌아보면 당연한 사과지만 흔치 않은 일인만큼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짧은 문장 속에 담은 판사의 진심이 읽힌다. 모두가 그렇게 평한다.

사법부의 사과가 어떤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