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법에 갇힌 세상

요즘처럼 TV에 변호사들이 많이 출연하는 일은 일찍이 없었다. 공중파 방송이든 케이블 방송이든 하루도 몇 번씩 화면에 등장하는 변호사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법률상담 정도로 출발했으나 지금은 정치문제 토론은 물론 전문분야가 아닌 코로나 방역문제까지도 활발한 의견을 개진한다. 심지어 오락 프로에도 자주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직접 프로그램의 MC(진행자)를 맡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법률적 탤런트를 필요로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변호사 수가 급증하기 때문일까. 지난해 변호사 시험에 3천330명이 응시했는데 1천691명이 합격을 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합격률 50.78%. 이렇게 해마다 평균 1천500명 이상의 변호사가 배출되다 보니 이들의 진로도 각자도생(各自圖生) 일 수밖에 없다.

며칠 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윗집 아주머니가 강아지를 품에 안고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어 그 사연을 물었더니, 그 강아지의 나이는 18살이라 했고, 지난해 백내장에 걸려 수술을 했다는 것이다. 개도 백내장에 걸리느냐고 물었더니 이제 백내장 뿐만 아니라 치매에 걸려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해서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그동안 치매 치료를 받았던 동물병원장이 약을 잘못 처방하는 바람에 치매가 악화됐다며 동물 전문 변호사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물론 동물병원 의사를 상대로 소송하기 위해서다. 참으로 대단한 애견가라 생각하며, 동물 전문 변호사는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아주머니는 유명 로펌 중에는 반려동물 전담 변호사팀이 생기는가 하면 동물의 법적 지위를 위해 활동하는 변호사 모임도 생겼다는 것이다. 하긴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1천500만이나 되고 있으니 그에 따른 법적 분쟁도 많을 것이다. 따라서 변호사의 수요가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강아지의 입양에서부터 동물병원의 의료사고, 동물 학대에 이르기까지…. 뿐만 아니라 법원 주변에 보면 이혼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는 사람도 많다. 또한 재산상속에 대한 치밀한 법적 대응이 필요해 지면서 상속 전문 변호사도 각광을 받고 있다. 이 밖에도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 환경문제 전문 변호사, 특허전문변호사, 기업의 인수 합병 전문 변호사 등등 ‘전문’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변호사가 많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만큼 사회가 분화되고 전문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정말 우리는 수많은 직업이 날로 새롭게 등장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한국고용직업분류(KECO) 기준으로 1969년 우리나라의 직업은 3천260개였다. 그러다가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1986년에는 8천900개로 거의 3배 늘어났으며, 2018년에는 1만2천145개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일본의 1만7천209개, 미국의 3만4천여개에는 크게 뒤지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직업도 계속 늘어날 것이며, 전문화될 것은 틀림없다. 이에 따라 법률제정도 끝없이 계속 될 것이다. 지난 20대 국회의 경우 발의된 법률안건이 2만개가 넘었는데 그 중 처리된 것은 30% 정도이고, 1만5천432건이 자동 폐기되었다. 그러나 그 1만5천여 건의 법률안도 수정 정도만 손질하여 다시 국회에 상정될 터이니 과연 우리는 법률의 홍수 속에 사는 건 아닌가 싶다. 따라서 법률시장도 그만큼 확대될 것이고 전문화될 것이다. 미국처럼 경미한 교통사고나 이웃집 정원수 그림자 문제까지도 변호사에게 맡겨 버리는 사회가 될지 모른다.

그런데 그 법이라는 것이 힘의 논리에 의해 어제는 분명히 ‘남자’였는데 오늘은 ‘여자’로 둔갑을 하고, 어제는 ‘호랑이’였다가 오늘은 ‘애완견’으로 변신하는 그 법 위에 군림하는 ‘힘’이 두려울 뿐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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