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이주노동자의 집 ‘비닐하우스’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기자페이지

과거 TV 개그 프로그램의 코너 중 “뭡니까 이게. 사장님 나빠요”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외국인노동자인 블랑카가 그들이 겪는 차별, 학대, 억압 등을 풍자한 것으로 꽤 인기를 끌었다. 이 개그 프로그램이 끝난지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우리사회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안타깝게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주민 인권단체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의 임금 체불은 1천억원에 육박한다. 미사용 연차수당은 고사하고, 월급과 퇴직금 등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다고 한다. 2019년 경북 영천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을 돈 대신 ‘장난감 쿠폰’으로 지급해 대구고용노동청에 고발된 사례가 있다. 이 업체의 베트남 이주노동자는 200명으로, 전체 체불액은 수억원에 달했다. 차별과 인권침해도 심각하다. 대구의 한 섬유공장에선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공장 운영이 어렵자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무급휴가를 강요했다. 같은 회사 한국인 직원 30여명은 유급휴가를 받았다. 네팔인 직원 6명이 사장에 항의하니, “취업비자 연장을 안 해준다”고 해 입을 다물어야 했다.

지난 20일에는 포천의 한 농장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국적의 여성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한파 경보에도 숙소에 난방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상태였다. 부검결과 사망 원인은 간경화에 의한 간손상으로 나왔지만, 보건 전문가들은 간건강이 나쁜 노동자에게 낮은 온도와 열악한 주거시설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했다.

비닐하우스는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숙식을 해결하는 기숙사나 다름없다. 비닐하우스 안에 조립식 패널이나 컨테이너로 가건물을 만들어 몇명씩 머문다. 비닐하우스 숙소는 바닥이 지나치게 얇아 단열이 안 되고 웃풍이 세다. 난방시설이라고는 전기장판이나 전기히터가 고작이다. 이는 화재나 수해 등 재난에 취약하다. 지난 9월 포천의 한 채소농장 비닐하우스에 불이 나 이주노동자 5명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가들은 ‘비닐하우스 기숙사는 사람이 살면 안 되는 곳’이라고 한다.

한국사회는 농업, 어업, 제조업 등 여러 분야에서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사실상 운영이 불가능하다. 코로나19에도 올 상반기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가 20여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제반 상황은 열악하다. 이주노동자들의 숙소, 안전 등 인권도 보호받아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