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는 인류와 함께 한 가장 오래된 가축 중 하나다. 기원전 6000년쯤 서남아시아와 인도에서 인간에 의해 길들여졌다고 한다. 소는 농경문화가 한반도에 정착되기 시작한 삼한시대 이후 뛰어난 노동력 덕분에 귀한 대접을 받았다. ‘삼국사기’에 신라 눌지왕 22년(438년) 백성에게 소로 수레 끄는 법을 가르쳤고, 지증왕 3년(502년) 소를 써서 논밭을 갈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큰 몸짓에 느린 걸음, 힘든 일을 묵묵히 해내는 소는 우직함과 근면, 풍요와 힘을 상징한다. 자기희생의 상징으로도 표현된다. 조상들은 “소는 하품밖에 버릴 게 없다”고 했다. 살아있을 때 달구지와 쟁기를 끌었고, 연자방아를 돌리는 동력원으로 쓰였다. 우유도 제공했다. 죽은 후엔 고기는 물론 내장까지도 먹을거리로 내놓았다. 뿔과 가죽도 공예품이나 악기, 옷과 신발 등을 만드는 데 활용됐다.
소는 벽사의 상징이기도 했다. 개업이나 이사를 했을 때 문 위에 코뚜레를 거는 풍습은 재물을 코뚜레처럼 꽉 잡아줘 가계가 번창하길 기원한 것이다. 시골에선 논밭과 함께 중요한 자산으로 꼽혔다. “소 팔아 자식 대학 보냈다”는 말처럼 소는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비상금고 역할을 했다.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 부른 것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소는 가족처럼 귀중히 여겨 정월 들어 첫번째 맞은 축일(丑日)을 ‘소날’이라 해서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쇠죽에 콩을 많이 넣는 등 잘 먹였다. 정월대보름에는 오곡밥과 나물 등을 먹이고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했다.
2021년은 신축년(辛丑年), ‘흰 소의 해’다. 흰색에 해당하는 천간 ‘신(辛)’과 소에 해당하는 ‘축(丑)’이 만났다. 올해는 여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소띠 해로 모든 것이 잘 풀리는 씩씩한 운세의 한 해라고 한다. 이중섭 화가의 작품 중 ‘흰 소’가 있다. 거친 붓질로 소의 힘찬 기운, 역동적인 자세를 표현했다. 흰 소는 백의민족인 우리 민족의 모습을 반영했다고 한다. 새해에는 이중섭의 ‘흰 소’처럼 힘찬 기운으로 코로나19를 물리치고 건강하고 평온한 한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건강하소’ ‘행복하소’ ‘부자되소’ ‘합격하소’…. 온라인으로 보내는 새해 인사들처럼.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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