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원 성균관대역 인근에서 3년째 족발집을 운영 중인 정종석씨(51)는 최근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었다. 배달 라이더 측에서 ‘계단할증’을 요구한 것인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로 주문이 접수되면 500원을 더 받겠다는 뜻이었다. 여기에 기존에 있던 야간할증이나 주말할증까지 더해지다 보면 배달 한 건에 수수료만 6천원 가까이 나오는 일도 잦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배달이 급증한 요즘 이것마저 포기했다간 생계유지가 곤란해지는 탓에 정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라이더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다.
#2.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일대 판교테크노밸리 상권에서 갈빗집을 하는 김찬규씨(43)는 두 달 전부터 ‘숯불에 구워주는 고기 배달’에 나섰다. 그러던 중 날씨가 추워지자 배달 라이더들이 ‘날씨할증’으로 500~1천원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기온에 대한 기준도 없이 라이더가 달라는대로 내줘야 하는 상황에 부당함을 느낀 김씨는 업체 측에 항의해봤지만 이렇다 할 해결책을 얻지 못했다. 김씨는 “이런 시기에 무슨 입법이냐”며 “배달료 인상으로 이어질 게 불 보듯 뻔하지 않나”라고 토로했다.
코로나19로 활발해진 배달시장에서 다양한 할증으로 자영업자의 부담이 가중되는 가운데 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이 배달료 인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4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21일 플랫폼 종사자 보호 대책을 발표했다. 그간 자영업자로 분류됐던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종사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해당 방안이 법으로 제정되면 배달 라이더 등도 실업급여를 받게 되고 표준계약서, 분쟁 해결 절차 등이 도입된다. 정부는 올 1분기 내에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배달업계는 새해 1일부터 기본 수수료를 3천원에서 3천500원으로 일제히 인상했다. 이미 배달 수요가 급증하면서 라이더가 부족해지자 ‘갑’의 위치에 오른 배달업체들은 앞선 사례처럼 온갖 이유로 할증을 붙이고 있다. 지난해 국감에서 공개된 서울신용보증재단의 배달앱 수수료 분석 자료를 보면, 1만7천원짜리 치킨 한 마리를 판매할 때 앱 광고료ㆍ중개료ㆍ배달료 등을 떼고 점주에게 남는 건 3천800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상황에서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이 도입되면 배달료 인상이 뒤따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업급여를 비롯한 산재보험, 표준계약서 등 조건들로 업체 측 비용 부담이 늘어나면 결국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플랫폼 종사자가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를 해결하고자 하는 취지”라며 “노사단체, 전문가 등과 충분히 협의해 문제로 제기된 사항에 대해 해결하고 필요한 내용이 담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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