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주한 미군의 백신 접종을 보며

6·25 전쟁이 발생하기 전부터 38선에서는 간헐적으로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 또한 북한은 11만 1천 명의 보병을 38선에 이동 배치하고 T34 중형 탱크 30대, 각종 포 1천600문을 확보하고 있어 어느 때고 남침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에 비해 우리 국군은 탱크 1대도 없는 것은 물론 심지어 4.2인치 박격포 하나 없는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였다. 이런 무력 불균형과 북한군의 간헐적 공격에 대해 당시 국회에서 의원들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 채병덕 육군 참모총장은 사태를 안이하게 평가하고 심지어 ‘만약 북한이 남침을 한다면 우리는 즉시 반격, 평양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게 될 것’이라며 호언장담을 했다. 국회는 물론 국민도 참모총장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막상 북한이 38선을 넘어 남침을 해왔을 때 우리는 과연 평양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 대반격을 했던가? 오히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인적, 물적으로 희생을 치러야 했던가?

38선 상황이 심상치 않을 때 안이한 평가를 하고 호언장담을 할 것이 아니라 북한에 대응할 탱크와 무기를 확보하여 힘의 균형을 이루었다면 그런 비극을 막지 않았을까 하는 가정을 하게 된다. 결국 국가 통치는 타이밍, 곧 때를 놓치지 않은 것임을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이라 하겠다.

지난 12월25일 크리스마스 날 인천공항에는 미국에서 백신을 싣고 온 수송기가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그리고 재빨리 헬기들이 백신을 미군 기지로 운반했다. 미군들에게는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었다고 환호성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속에 전인류가 갈망하던 백신이 드디어 한국 땅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반가우면서도 마음이 허전한 것은 왜 그럴까? 미국은 멀리 떨어져 있는 그들의 군인과 군인가족들을 위해 이렇게 긴급 백신 수송 작전을 벌이는가 하면 미국 내 인디언 보호구역에 있는 원주민까지도 백신을 공급했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독일, 프랑스는 물론 헝가리도 백신을 확보해 자국민에게 접종을 시작했다. 캐나다 트뤼도 총리는 8천800만 회분의 백신을 확보했다고 밝혔고, 뉴질랜드는 그들 국민들에게 필요한 물량을 확보했으며, 남은 것은 이웃 나라에 나누어 줄 수도 있다고 했다. 참 부럽다. 어떻게 저들 나라들은 그렇게 일찍 백신을 확보했을까?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여름부터 백신 확보에 나섰다고 한다. 그러니까 방역을 위해 시민활동을 규제하거나 심지어 봉쇄를 하는 등 야단법석을 떨면서 뒤로는 백신 확보 작전을 펼쳤던 것이다. 그 무렵 미국에서는 코로나 재난지원금 문제가 나왔을 때 ‘헬리콥터에 달러를 가득 싣고 전국을 다니며 뿌려도 소용없다. 백신이 답이다.’라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아무리 현금을 지원해도 코로나에 빠진 미국경제를 살리는 길은 백신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백신으로 항체를 회복하면 노래방이건 학원이나 식당, 관광지 그 어디든지 마음 놓고 다닐 수 있을 터이고 그러면 경제는 저절로 살아 날것 아닌가. 그래서 백신 확보에 사활을 걸었는지 모른다. 우리나라도 백신 이야기가 나온 것이 어제오늘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나올 때마다 당국은 물량확보를 장담했었다. 그러나 이 시간까지 백신은 이 땅에 도착하지 않았고 마침내 대통령까지 백신 확보전에 나서야 했다. 아무리 확보가 되어도 중요한 것은 백신이 우리나라에 도착하는 타이밍이다.

주한 미군들이 우리나라에서 백신을 접종하는 모습이 그래서 착잡하기만 하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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