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따뜻한 말 한마디 듣고 싶었는데…비극으로 내몬 '사회 안전망'

‘제발 너무 슬퍼하지 마. 내가 너무 힘이 들어 그랬어. 평생 이런 모습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어. 미안해, 나만 생각해서’.

묻지마 폭행 트라우마에 끝내 세상을 떠난 피해자(경기일보 1월12일자 1면) J씨의 생전 마지막 일기 내용이다. 그는 사고 이후 자살예방 전문기관 등에 수차례 도움을 호소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결국 어느 곳도 그의 극단적 선택을 막진 못했다.

J씨는 지난해 11월께 자살예방 상담전화(☎1393)를 통해 용인지역 자살예방 관련 기관과 처음 연결됐다. 수차례 상담을 진행하던 해당 기관은 신고자에게 자살 방법과 도구, 시간 및 장소, 과거 시도 이력 등을 물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J씨와 매일 아침 만났던 L목사는 “J씨가 상담받던 기관에서 ‘그래서 언제 어디서 죽을 건데요? 구체적인 날짜랑 방법 말씀하세요’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큰 무력감을 느꼈다”며 “의지할 곳이 필요했을 텐데 아무도 자기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이 무렵 자살예방 전문기관 측은 J씨의 전화를 받고 경찰에 출동 신고를 하기도 했다. 자살 위험성과 응급상황 여부를 확인하면 각종 기관은 경찰에 구조 신고를 할 수 있다. 하지만 J씨는 이마저 두려워했다. 그의 한 친인척은 “기관에 가볍게 하소연하려고 할 때마다 집에 경찰이 찾아오는데 어떻게 편히 전화를 했겠나. (J씨가) 혼자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J씨를 벼랑으로 내몬 건 이뿐만이 아니다.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18년 7월께 그는 수원지방법원에 가해자와 분리해주길 요청했으나 묵살, 같은 공간에서 반성의 기미 없는 모습을 본 것은 물론 심한 말까지 들었다고 주장했다.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J씨는 생전 이 부분에서 가장 원통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9일 J씨는 일기에 ‘오늘 저녁 9시경 마지막으로 1393에 전화를 했다. 그냥 따뜻한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기대일뿐 아무도 나의 아픔을 모른다’고 적었다.

용인지역 한 자살예방 전문기관 관계자는 “자살예방 매뉴얼에 따라 자살의 구체성을 판단하기 위해 장소, 날짜, 도구를 물어볼 수 있다. 만약 (J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러한 의도의 질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며 “J씨는 우리 기관의 상담자는 아니었으며 1393 등을 통해 상담을 했던 것으로는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생전 자살 구조 신고를 받고 J씨 주거지 등을 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누가 신고했고 몇 번 출동했는지 등은 밝히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연우기자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 지인이 있을 경우 정신건강상담 ☎1577-0199, 생명의전화 ☎1588-9191, 청소년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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