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불교개혁론의 대중불교와 민생 안정

흔히 일제강점기라고 하면 암흑시대와 같은 이미지를 갖는 것이 보통이지만, 불교의 경우에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 일제강점기 때에 불교문화는 상당히 진전된 모습이었다. 이때 여러 가지의 불교개혁론도 등장하였다. 여기서는 불교개혁론 가운데에 ‘대중불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만해 한용운(1879~1944)은 「조선불교의 개혁안」(1931년)에서 ‘대중불교의 건설’을 주장했는데, 여기서 ‘대중불교’는 불교사상 등을 대중이 공부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불교가 인간사회를 떠나서 인적이 드문 산간벽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세간 속으로 파고들어가 세상 사람을 구제한다는 것이다. 한용운은 당시의 불교가 ‘사찰의 종교’이고 ‘승려의 종교’라고 비판하면서 산간에 있는 불교를 ‘거리의 불교’, 곧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불교로 바꾸고, 승려의 불교를 ‘대중의 불교’로 바꾸자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한용운만이 제시한 것이 아니고 불교개혁론자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이었다.

한용운은 ‘대중불교의 건설’을 위해서 그 방법의 하나로서 불교도의 생활을 보장하자고 주장한다. 당시의 일반 대중이 바라는 것이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 곧 생활을 보장하는 데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무시하고 불교의 교리만을 전하고자 한다면 이는 사회현실을 무시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한용운은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한용운만이 제시한 것이 아니다. 3ㆍ1운동 때에 33인의 대표로 참가했던 백용성(1864~1940)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도시에서는 공장을 세워서 불교인을 취업시키고 포교사가 이들에게 불교를 가르치도록 하고, 농촌에서는 생산소비조합 등을 세워서 농민의 생활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불교를 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이들의 주장이 현실에서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경청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2021년 새해의 여론조사에 차기 대통령으로 경제를 살릴 사람을 가장 선호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국민의 31.9%가 경제를 살릴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되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바람은 20대와 30대의 젊은 층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20대의 절반 정도가 경제를 살릴 사람을 선호하고, 30대는 33.4%가 경제문제에 능력 있는 사람을 희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불교의 안목으로 보자면 ‘대중불교의 건설’을 위해서 불교도의 생활을 보장하자고 주장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불교개혁론에 따르면 일반 대중의 경제적 삶이 안정되고 윤택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일반 대중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추상적 구호는 그다음 순위에 있다. 불교개혁론자들이 이와 같은 입장을 추구하였다면, 오늘의 정치인에서는 더욱더 요구되는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민생안정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고, 그 바탕 위에서 여러 가지 개혁의 깃발을 휘둘러야 대다수 국민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의 불교개혁론자도 생활의 보장을 우선시하였는데, 현실의 정치에서 민생의 안정을 추구하는 데 부족한 점이 나타나는 것은 안타까운 현상이다.

이병욱 불교학연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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