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증죄는 판사 앞에서 범하는 죄다.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선거를 판사 앞에서 한다. 서명 날인한 선서서를 판사에 제출한다. 그 판사 앞에서 거짓을 말하면 처벌받는다. 재판상 판단 결정에 영향을 주든 안 주든 상관없다. 자기 기억에 반한 사실의 진술만 있으면 죄가 된다. 형량도 무겁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관념적으로는 법(法)에 대한 존엄이다. 현실적으로는 법관에 대한 존중이다.
대법원장은 사법부 수장이다. 법관을 대표하는 법관이다. 자리가 갖는 의미가 막중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준 실망은 그래서 크다. 탄핵 관련 발언이 불거졌을 때만 해도 이렇진 않았다. 보도된 표현이 사실인지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대법원을 통해 나온 김 대법원장의 해명도 그랬다.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은 없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많은 국민이 그의 해명을 믿었다.
현직 대법원장을 향한 당연한 신뢰였다. 많은 국민이 임 부장판사가 왜곡 또는 과장했을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대법원장과 부장판사를 보는 국민 시선의 차이었다. 그 순간에 녹취록이 공개됐다. 대법원장의 목소리가 만천하에 공개됐다. 사표ㆍ탄핵 언급이 다 사실이었다. “툭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했다고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나.” 거짓 해명이었다.
선서한 국민이 그 법관 앞에서 거짓말하면 처벌받는다. 그러면 현직 대법원장이 국민 앞에서 거짓말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녹음이 공개되자 김 대법원장이 사과했다. 기자들에 일일이 입장문을 보냈다. “9개월 전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사실과) 다르게 답변한 것에 송구하다”고 했다. 녹음자료를 토대로 기억을 되짚어 보니 기억이 났다고 했다. 법관 판결문에서 결코 볼 수 없었던 ‘송구하다’는 표현이다.
임 부장판사가 왜 녹음까지 하게 됐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상관과의 면담을 녹취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지적도 있다. 하지만, 더 많은 국민은 김 대법원장에 대한 실망을 말한다. 만일 녹취록이 없었다면 어찌 됐을까를 상상한다. 김 대법원장의 해명이 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겠나. 임 부장의 폭로는 대법원장을 향한 음해로 정리되지 않았겠나. 탄핵보다 더한 패륜 판사로 남지 않았겠나.
4일, 국회는 임성근 탄핵안을 가결했다. 우리 헌정사의 첫 법관 탄핵이다. 3천명의 판사들에 참담한 날이었을 것이다. 같은 날, 현직 대법원장이 공개 사과했다. 우리 헌정사의 첫 거짓말 사과다. 3천명의 판사들에 이 역시 참담한 날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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