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권력을 잃었을 때와 가졌을 때

우리 헌정사상 국회의 첫 청문회는 1988년에 있었던 ‘5공 비리 청문회’였다.

전두환 前 대통령이 ‘일해재단’을 만들면서 대기업으로부터 거둬들인 불법 자금과 삼청교육대 등 인권유린 등이 청문회의 주제였다. 이때 노무현 의원은 정주영 현대그룹회장 등 재벌들을 신랄하게 추궁, 일약 청문회 스타가 되었고 결국 대통령까지 되었다. 야당의 K의원도 5공 비리를 날카롭게 추궁하며 ‘투사’의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전두환 前대통령도 K의원의 공격을 피해 가지 못하였고 특히 재벌로부터의 ‘일해재단’ 모금이 자발적이 아니라 강제적이라는 데 초점을 모아 갔다. 이렇게 하여 전두환으로부터 쓰고 남은 돈이 139억원이나 된다는 진술을 받아 냈으며 청문회가 끝나자 전두환은 강원도 백담사로 떠났다. 청문회를 계기로 5공 실세들에 대한 비리의혹 수사가 시작됐고 당시 서울시장, 장관, 전두환 前 대통령의 동생, 형, 처남도 함께 교도소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불과 3년 후 1991년 노태우 정권의 6공화국 비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수서택지 비리사건이다. 국회의원, 고위 공무원, 재벌, 심지어 언론인까지 관련된 ‘종합 비리 세트’. 특히 이채로운 것은 5공 비리청문회에 그렇게 호되게 비리를 추궁하던 K의원이 수서비리에 관련되어 갇힌 것이다. 그러니까 서울구치소는 5공 비리 관련 실력자들이 나가고 그들을 공격하던 6공 실력자들이 그 자리에 들어온 것이니 정말 이런 코미디가 어디에 있는가? 이렇게 정치는 돌고 도는 것인지 모르겠다. 특히 권력을 잃었을 때와 권력을 잡았을 때 인간은 정의로운 독수리가 되기도 하고,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지옥의 개’가 되기도 한다.

지금 야당이 새누리당으로서 여당일 때 국회에서의 장관인사 청문회가 신상 털기에 급급하여 정책 청문회가 되지 못한다며 청문회 법을 개정하자고 했다. 예를 들어 장관 며느리의 친정아버지가 과거 부동산 거래한 것까지 자료를 제출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타당한 주장이다. 그러자 지금 여당이 민주당으로써 야당이던 시절, 청문회를 ‘깜깜이’ 청문회로 만들려고 한다며 반대하여 성사되지 못했다.

그런데 여야가 바뀌어 새누리당이 ‘국민의 힘’으로 야당이 되어 조국 前 법무장관 가족 신상 털기를 비롯 위장전입, 재산은닉, 자녀 유학 등 장관후보자들의 사생활을 캐내자 여당 측에서 청문회법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번에는 청문회법 개정을 주장했던 야당이 펄펄 뛰었다. 이렇듯 권력을 잡았을 때와 잃었을 때 입장은 완전히 바뀌고 만다.

여당인 민주당이 야당시절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대여 투쟁의 방법으로 활용했고 김대중 前 대통령은 1964년 5시간19분의 기록을 가지고 왔다. 그런데 민주당이 여당이 되더니 야당의 투쟁 무기인 필리버스터를 무력화시켜 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12월 국민의 힘이 ‘국가정보원법 전부 개정 법률안’에 대한 반대를 위해 윤희숙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했는데 재적 5분의 3이 토론 종료를 가결해 그 이상의 발언을 중지시켜 버렸다. 그러니 180석 거대 여당은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해치울 수 있다. 만약 민주당이 야당일 때 여당이 그렇게 필리버스터를 중지시켰다면 ‘반민주 행위’라며 난리가 났을 것이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참으로 권력을 잡았을 때와 권력을 잃었을 때 보여주는 삼류 저질 코미디의 행진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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