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이치에 잘 통달한 이는 마땅함만을 따를 뿐

고려 말과 조선 초 시기 가장 중요한 불교학자는 아마도 함허당 기화(涵虛堂己和, 1376-1433)일 것이다. 그는 고려조의 왕씨에서 조선조의 이씨로 왕조가 교체되던 시기에 산 인물이다. 이때는 왕조만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이념이 불교에서 유교로 교체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에 고려조의 불교 교단은 조선조에 선종으로 강제로 통폐합되고 축소되는 과정을 거쳤다. 이외에도 유학자들은 강력하게 배불론을 전개하며 불교의 진리성에 대해 도전했고, 승려들은 이에 대해 응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응답을 한 이는 드물다. 불교적 입장에서 이에 대한 응답을 가장 충실하게 더 나아가 유일하게 한 이가 기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의 우리는 그 대 전환기 시대에 기화가 전통을 어떻게 계승하고, 새로운 전통을 어떻게 세워나갔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기화는 기본적으로 보조 지눌(普照知訥, 1158-1210)의 사상을 이어받고 있다. 기화는 불교 진리의 가르침에 근본적으로 선과 교의 차별이 있다고 보지 않았다. 이는 지눌의 선교일치(禪敎一致)의 정신에 뿌리를 두는 것이다. 지눌은 궁극적으로 교학을 버리고 선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에, 기화는 선이나 교라는 분별적인 의식도 버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시 유학자들의 배불론에 대해 기화는 호불론을 전개했다. 그는 승려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불교 우위 입장에 있지만, 유교와 불교가 본질적으로 동일성이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기화의 『현정론(顯正論)』에 나오는 이야기 일부를 정리해보겠다. 유교 특히 『대학(大學)』에서 ‘명덕(明德)’ 즉 ‘밝은 덕’을 밝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강령이다. 유교의 밝은 덕에 해당하는 것이 불교에서는 ‘묘정명심(妙精明心)’ 즉 ‘묘하고 깨끗하며 밝은 마음’이라는 것이다. 모든 중생에게 내재돼 있는 바로 이 마음을 알아차려 일깨우게 하는 것이 중생 구제의 불교라면, 모든 사람들이 그 자신 안에 갖추는 그렇지만 아직은 숨겨져 있는 밝은 덕을 밝히는 것이 중생 교화의 유교다. 기화는 불교와 유교가 “말하는 이치가 이미 같다”고 말하고 있다. 기화는 “순임금은 물어보기를 좋아했고, 가까운 데에 있는 말을 살펴 악을 감추고 선을 드러내기를 좋아했으며, 우임금은 훌륭한 말을 들으면 절을 했다”고 하며, 만일 순임금이나 우임금이 부처님 말씀을 만났다면 부처님 말씀을 아름답게 여길 뿐만 아니라 부처님 말씀에 의지하였을 것이라고 역설한다.

기화는 더 나아가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의 가르침이 “은밀히 서로 들어맞아 마치 한 입에서 나온 듯하다”고 고백한다. 현대의 우리에게 기화의 다음 말은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 그가 가리키는바, 훌륭한 사람이란 무엇인지 다시 음미할 필요가 있다. “자기만이 전적으로 옳다 하고 남을 소홀히 하며, 이것을 옳다 하고 저것은 틀리다 하는 것은 사람의 보통 마음이다. 그러나 이치에 잘 통달한 이는 마땅함만을 따를 뿐이다. 이런 이가 어찌 남과 나, 이것과 저것으로써 옳고 그르다 하는 사람이겠는가?”

김원명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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