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국가이자 열강으로 둘러싸여 있는 대한민국에 균형 잡힌 외교안보는 무척 중요하다. 100여년전 열강들의 제국주의 침탈에 조선이 무력하게 무너지고 일제 식민지와 남북 분단으로까지 이어진 것을 보면, 우리에게 외교안보는 생명줄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 외교안보가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미중 패권경쟁이 가열됐는데 그 핵심 지역은 한국이 포함된 동아시아다. 양국이 패권경쟁의 대표 전략으로 내세운 것이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이며 미국의 경우 인도·태평양전략이다. 이 두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며 중국과 미국이 탐색전을 벌이고 있지만 언제 그것이 전면적 충돌로 치달을지는 알 수 없다.
육해상 실크로드 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의 추진을 위해 중국정부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발족시켰는데 한국은 AIIB 설립 과정에 적극 참여해 중국, 인도, 러시아, 독일에 이어 5위의 지분율을 획득했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AIIB에 참여하지 않고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같은 기존의 국제금융 질서를 통해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고 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 견제 과정에서 한국이 어려움에 처한 결정판은 인도·태평양전략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의 해양 진출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구축한 중국 포위망이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이 중국의 일대일로 패권주의를 배격하며 자유와 열린 민주사회를 지향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그 지향점을 분명히 했다.
이 전략에 관해 2017년 11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국에 인도·태평양 전략 구상에 참여해줄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이 구상의 핵심에 일본이 있다는 점과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거절했다. 한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하지 않고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AIIB)에 가담하면서, 미국과 일본이 볼 때 한국은 중국 쪽으로 기운 것으로 비치게 됐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하더라도, 외교안보의 기본은 한미일 협력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등장하자 문재인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 회복을 서두르고 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진전을 보이지 못한 데에는 일본의 협조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외교안보는 우리에게 생명줄이자 냉혹한 현실을 반영한다. 감성으로 접근하지 말고 이성으로 접근해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승연 인하대 경영대학 교수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