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제의 칼 앞에 맞선 할아버지의 절개는 제게 평생의 자랑입니다.”
인천 만세운동의 역사를 쓴 계양구 황어장터 3·1만세운동을 주도한 심혁성 지사의 손자 심현교씨(69)는 할아버지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심씨가 7살이던 때 유명을 달리한 심 지사는 인천에서 전개한 가장 대규모 만세운동인 황어장터 만세운동의 선봉에 섰다.
평소 어려운 이웃을 보면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곳간을 털어주던 심 지사는 나라를 빼앗기고 슬픔에 빠진 국민을 바라볼 수 없어 당당히 일제의 총칼에 맞섰다. 비록 심씨가 어린시절 돌아가시긴 했지만, 그래도 할머니를 통해, 심 지사를 기억했던 이웃을 통해 그날의 역사만은 마음에 새겨져 있다.
심씨는 “당시 일본 순사들에게 체포되고도 의연한 모습을 보이시고, 재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 받고도 ‘너희가 왜 나를 심판하느냐’며 화를 낸 분”이라고 했다. 이어 “출소한 후에도 일본에 세금을 내고 싶지 않다고 하시면서 산속으로 들어가 전북 무주의 덕유산이나 함경도의 유명산에 다니면서 약초를 캐 생활하셨다”고 설명했다.
심씨가 추억하는 할아버지는 황국신민이 되지 않겠다며 스스로 은둔 생활을 택하고, 해방 때까지 가족들을 작은할아버지에게 맡긴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다. 그런 할아버지의 가르침은 지금의 심씨에겐 자긍심으로 남아있다.
심씨는 “할아버지가 목숨을 내놓고 지킨 절개를 떠올리면 너무나 대단하고,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그이지만 가끔 정부에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심씨는 “독립운동가 후손분들이 대부분 형편이 여의치 않다”며 “하지만 정부에서는 우리에게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3·1절이나 8·15때만 반짝 연락해 행사에 불러다 놓는게 전부인데, 그럴 때 좀 서운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질적인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지속해서 관심을 두고 살펴봐준다면 우리 뿐 아니라 국민들이 자긍심을 갖고 나라를 사랑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정한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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