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와 80년대 시절, 김포공항은 유학파들의 출국과 귀국을 위해 모인 환송환영인파로 늘 시끌벅적했다. 유학과정에서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의 여부는 일단 제쳐 두고 훈장을 가슴에 달은 전승장군의 금의환향 같은 기개가 하늘을 향한다. 이어서, 휘황찬란하게 귀국연주회를 선전하는 것을 봤다. 유학을 다녀오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환상에서 살던 시절이다. 진정한 실력의 향상과 독특한 학문의 획득을 위한 원천적 목표보다는 어떻게 해서라도 학위를 따서 귀국 비행기를 타는 것을 목표로 했던 시절의 얘기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런 과정을 거쳐 대학교수 등의 자리를 확보하고 지금까지 그것을 유지하는 것을 보고 있다. 유학을 다녀온 연주자들의 수가 손으로 셀 정도로 희귀한 시대의 해프닝이지만 아직도 그런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지난주, 연주를 위해 들른 서울의 주요 콘서트홀에는 귀국연주회라는 이름의 연주를 알리는 전단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외국여행이 외딴 시골을 방문하는 것보다 용이한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으며 미국의 일부 음대들의 운영이 한국에서 온 유학생의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더 이상 ‘유학=특권’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귀국연주회=교수자리’ 확보를 위한 시발점이라는 희귀한 현상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학을 다녀온 귀국연주회를 위한 기획사의 콘서트홀 확보와 홍보는 뜨겁다. 유학은 지식과 전문성을 추가로 얻기 위한 과정이다. 연주자들에게는 연주가 생활화돼야 한다. 귀국연주회 이후 새로운 연주를 위해 애쓰는 음악가들이 있는 반면, 우여곡절 끝에 귀국연주회를 마치고 이어지는 연주회를 찾아볼 수 없는 음악가도 있다. 원하는 교수자리를 얻은 후 학생들이 본받을 만한 연주를 지속적으로 해 자기개발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 음악가의 본분임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연주와는 거리가 먼 활동을 하는 연주자들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연주회는 반드시 화려한 드레스를 맞춰 입고 꽤 비싼 미용실에서 머리를 꾸민 후 지역에서 가장 알려진 콘서트홀에서 화려하게 축하받으며 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귀국연주회를 준비하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권면하고 싶다. 연주자들은 자기 개발을 위해 잠시도 열정의 숨을 멈출 수 없음이 진실이라면 진정한 연주는 동네마을회관에서, 아주 외딴 시골 교회에서, 산속 깊은 사찰에서, 작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소박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이뤄 질 수 있다.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연주에 꼭 오고 싶은 청중을 정성껏 모시고 꾸준히 그리고 자주 연주하는 것이 연주자의 사명이다.
이제부터 귀국연주회라는 용어에서 ‘귀국’을 빼자. 연주의 궁극적인 목표는 연주자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연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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