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아침] 노예제도의 진화

노예는 자신의 의지와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남의 조정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인격으로서의 권리와 자유 없이 주인의 지배하에 강제로 노동하며 또 상품으로 매매·양도의 대상이 되는 인간을 노예라고 한다. 그런데 과거 봉건제도 국가나 식민지 전성시대에의 노예제도와는 다르게 민주화된 현실 속에서도 변화된 현대판 노예의 모습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고도의 풍요 속에서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계급투쟁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지금 세대들에게는 좀 불편한 고통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상에 진입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불평등 속에서 노예가 돼버린 것이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산업재해로 인한 공사 현장에서의 수많은 사고사, 배송업체 직원들의 과로사, 강제 퇴출 실직자들의 고통, 힘 있는 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에 당하는 성노예, 그리고 이런 현대판 노예 형태로 인해 개인의 인권은 유린 당하고 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인류가 만든 풍요 속에서 기계문명이 보이지 않게 사람들을 조정하고 노예화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편해지려고 차를 사지만 사실 모두가 차의 노예다. IT 기술의 발달로 모두가 편한 것 같지만, 밤낮없이 정보에 노출돼 노예와 같이 긴장 속에 살고 있다.

사회 변화에서 오는 또 다른 비의도적 노예화도 있다. 반려견의 유행으로 타인에게는 사랑과 관심을 주지도 못하면서사랑하는 개로 인해 거꾸로 그 뒷바라지하느라 개의 노예로 전락하는 사람들이 많다. 본인들은 그 시간을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살아가지도 못하고 사람이 아닌 개에게 일생을 허비한다.

또한 모두가 자유 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보이지 않고 돈과 권력의 노예로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울 좋은 자유를 노래하며 산다. 그리고 자연을 소유하려고 개발하지만 결국 자연의 역습을 받고 바이러스가 창궐해 인류는 자연과 바이러스의 노예로 사는지도 모른다.

철학자 플라톤은 위대한 철인이 나타나 정치를 해야 한다고 외쳤다. 하지만 그 이상사회는 독재자가 전횡하는 세상으로 변했다. 독선적 성향의 종교나 정치일수록 현실을 유토피아로 만들겠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데, 그것은 달콤한 말로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특히 종교와 이념만큼 과거에 세상을 전쟁으로 타락시킨 일도 없다. 결국 허상에 이끌려 유혹에 빠지다 보면, 자신과 수많은 사람의 자유는 사라지고, 모두를 노예의 길로 이끌게 된다.

끊임없이 노예를 착취하려는 주인과 주인이 되기 위한 노예의 끝없는 사투만이 존재한다. 우리가 노예제도에서 깨어날 때마다 해결은 커녕 노예제도는 진화한다. 그러나 나는 누구인가? 세상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고 화두를 잘 지키고 살다 보면 진실은 우리에게 답을 줄 것이다.

선일스님 법명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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