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세종대왕 ‘나는 북극성이 아니다’

세종대왕과 노비출신으로 천재 과학자인 장영실을 다룬 영화 <천문>은 세종대왕역의 한석규와 장영실 역의 최민식의 뜨거운 연기로 감동을 더 해 주었다.

영화 속에서 세종대왕과 장영실이 별을 보며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장영실이 세종대왕을 가리켜 ‘저기 북극성이 전하 이십니다’라고 말하자 세종대왕은 ‘그건 아니다, 북극성은 중국 황제만이 칭할 수 있다’고 주의를 준다. 북극성이 지구의 자전축과 북쪽에서 일치하는 별로 ‘작은 곰’ 자리에서 가장 빛을 발하기 때문에 오직 중국의 황제만이 그것에 비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국내에서조차 세종대왕도 북극성에 비유하지 못한 것이 우리 역사이다. 만약 세종대왕이 장영실이 말한 대로 ‘그래 내가 북극성이다’ 했다면, 그리고 그 말을 누가 중국에 밀고했다면 큰 변고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렇게 중국 황제를 비하하거나 중국의 연호를 쓰지 않는 등 중국에 불경한 행위를 했을 때 정적들이 중국에 밀고하여 큰 사건을 일으킨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했다. 특히 이와 같은 현상은 고려 때부터 극심했는데 심지어 우리의 왕 책봉권도 중국이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가령 원(元)나라가 고려에 군대를 주둔시키지 않고도 내정을 마음대로 간섭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왕 책봉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왕으로 인정해야 즉위할 수 있었고, 재임 중인 왕도 미덥지 않으면 바꿀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고려의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등 3명의 왕은 물러났다가 다시 왕위에 오르는 등 두 번씩이나 왕의 자리에 오르는 허망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충혜왕은 주색잡기에 빠졌다고 원나라 왕실에서 중국으로 압송했으며, 퇴위한 아버지 충숙왕을 다시 왕위에 앉히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렇듯 중국 원나라는 고려를 자기네 속국(屬國) 또는 번국(藩國) 정도로 취급하고 주권을 가진 국가 예우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고려의 대표적 간신으로 꼽히는 유청신(柳淸臣) 같은 사람은 아예 고려를 원의 속령으로 편입시켜 달라고 원에 청원하기도 했고, 멀쩡히 살아있는 충숙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폐위 운동을 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고려와 중국과의 관계는 조선왕조에 이르러서도 별반 나아지지 않았고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그리고 구한말 일본 세력이 뻗어 오면서 새로운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1876년 일본의 무력시위 속에 맺어진 강화도 조약 제1조에서 일본이 ‘조선은 자주국가 …’라고 선언한 것만 봐도 청의 속국처럼 되어 있는 것을 끊고 조선을 자기들 일본의 세력권으로 예속시키려는 흉계가 있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조선이 미국과 수교조약을 맺은 1882년, 청나라 대표 이홍장은 조약 제1조에 ‘조선은 청의 속국이며 내정은 조선의 자주’라는 조항을 넣자고 강력히 요구할 정도였다. 이에 미국 대표 슈펠트가 단호하게 거절, ‘속국’이라는 문항은 넣지 않았다.

이렇게 불과 140년전 까지만 해도 중국은 우리나라를 속국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 이처럼 중국의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의 DNA는 지금도 그들의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고 있지는 않은지?

가령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최고 통치자 시진핑과의 대화 중 시진핑이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다 하여 논란이 되었지만, 사실이라면 섬뜩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사드 문제로 관광객의 발을 묶어버리고, 김치의 종주국도 중국이라는 등 억지를 부리는 것을 보면 역시 그들 의식 속에 지워지지 않는 DNA가 있음을 새삼 느낀다.

정말 세종대왕을 북극성에 비유하는 것조차 중국의 눈치를 봐야 했던 역사의 비극이 재현되지 않으려면 우리 정치인들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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