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집안은 스페인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상류층이었고 그는 1928년 진보적인 의식을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는 문학과 사상에 대한 열정이 높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독서를 좋아하였고 진보적인 사상에 일찍 눈을 떴다.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의대에서 공부하였고 학창 시절에는 친구 알베르토와 함께 모터사이클을 타고 남미 일대 4,500km를 여행하며 고대 유적과 문명에 매료되었다. 이때 그는 라틴아메리카 역사와 민중들의 삶에 깊은 인상과 함께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여행에서 돌아와 학업을 마치고 의사가 되었다.
그 후 그는 사회주의 혁명가가 되어 자본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꿈을 이루려고 과테말라로 떠났다. 그곳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 소속 정치혁명가로 폭넓은 인맥과 경험이 있는 여성 혁명가 일다 가데아 아코스타를 만나 첫 결혼 하였다..
체 게바라는 1955년 멕시코에 머물 때 피델 카스트로와 그의 동생 라울을 만나 쿠바혁명에 뛰어들었다. 그는 멕시코에서 혁명군을 조직하여 군사훈련을 받고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에 침투하여 바티스타 정부군에 반항하며 게릴라 활동을 하였다. 그는 친미 정부를 전복하여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하였고 피델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는 데 이바지하여 쿠바 시민이 되었다.
혁명 직후 그는 순회대사가 되어 이집트의 나세르, 인도의 네루,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등 비동맹국가 지도자들을 만나 반제국주의와 반식민주의 외교활동으로 우호를 다졌다. 또한 그는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났고 쿠바 대표로 UN 총회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그 후 그는 혁명 정부에서 국가토지개혁위원회 위원장, 중앙은행 총재, 산업부 장관에 발탁되었다. 그는 농업국 쿠바를 공업국화 하려는 계획의 책임자가 되어 ‘쿠바의 두뇌’로 칭송받으며 사회주의 정권의 기초를 세워나갔지만, 애초부터 그는 사회주의 몽상가였지 금융이나 경제 전문가는 아니었다. 특히 정권 초기 너무 서두른 산업시설 국유화 조치는 서방 자본 이탈과 함께 미국의 경제 봉쇄라는 양날의 칼을 맞고 쿠바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아직도 그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다.
박태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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