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사람을 사귀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교류하느냐에 따라 자기 삶의 방향이 바뀌기도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돌아볼 때 현재의 나를 있게 해준 스승님들을 생각하게 된다. 여러 스승님 가운데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선생님들이 계신다. 그 가운데 가장 고마우신 분은 나의 지도교수님이시다. 선생님께서는 학부 시절부터 내가 더 깊은 사색에 빠지게 하고, 대학원을 진학하고 계속 공부할 수 있는 동기를 주신 어른이다.
나는 학부 4학년 1학기 중반에 접어들 무렵 대학원 진학 상담 차 우리 학교 동양철학 담당이셨던 선생님을 댁으로 찾아뵀다. 요즘에는 선생님 댁으로 선생님을 찾아뵙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그리 이상한 풍경이 아니었다. 집 주변을 산책하며 이런저런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은 “나는 가르칠 게 없다. (선생님은 자신이 사는 연립주택의 화단에 돋아나는 새싹을 가리키며) 저 새싹들이 더 많은 가르침을 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선생님은 한 대학을 추천해주셨다. 나는 선생님의 추천을 따르지 않았다.
나는 가르칠 게 없다는 선생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지만, 알 수 없는 전율이 있었다. 그런 말씀과 가르침을 내게 주시는 선생님은 추천해주신 그 대학에 계시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오히려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기 위해서라도 선생님께 더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이 말씀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것은 내게 하나의 울림이고 하나의 화두다. 이 이야기를 25년이 훌쩍 지나서 말씀드렸는데, 기억은 못 하시고 즐겁게 웃으셨다.
나는 선생님께 감히 따라할 수 없는 격조와 절제를 느낀다. 한 번은 ‘나만 못한 이를 사귀지 말라’는『논어』에 나오는 공자 말씀에 대해, 참 이상한 말이라고 하시면서, 그럼 아무도 사귀지 못할 거라는 것이다. 자기(a)보다 잘난 사람(b)이 자기(b)만 못한 사람을 사귀지 않으면 자기(a)는 사귈 사람이 없고, 결국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공자의 이 말씀에 대해, “누구나 각자의 장점이 있고 배울 것이 있으니, ‘자기만 못한 벗이란 없다’”로 해석하셨다.
나는 당시 이 해석이 참 그럴듯한 해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보면서, 스스로 누구로부터도 배울 수 있는 낮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선생님 해석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마음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일반 사람이 가지는 마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명심보감』에 공자의 말씀이라고 하며 전해지는 말이 있다. ‘착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난초가 있는 방에 있는 것과 같다. 시간이 한참 지나면 그 향기를 맡지 못하지만, 그에게 동화된다. 나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생선 가게에 들어간 것과 같다. 시간이 한참 지나면 그 냄새를 맡지 못하지만, 그에게 감염된다. 빨간 물감을 담은 것은 붉어지고 검은 물감을 담은 것은 검어진다. 그래서 된 사람은 반드시 함께 지내는 사람에 대해 신중하다.’
김원명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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