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한국 천주교회는 백신 나눔 운동을 전개한다. 일부 지역(교구)과 단체에서 시작한 운동을 전국 차원에서 전개하기로 한 것이다. 백신 나눔 운동에 대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 결정은 두 가지 배경에서 설명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백신 나눔 운동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그리고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준비하면서 애덕 실천을 통해 두 신부님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결의한 공동체적 실천 과제다. 이러한 한국주교회의의 결정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연대 의식이 작용했다. 교황은 지난해 10월 회칙 『모든 형제들』을 발표하면서 인간의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를 강조했다. 백신 운동으로 모은 기금은 교황청으로 전달돼 백신이 필요한 가난한 나라에 우선으로 전달될 예정이다.
백신 접종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대유행의 종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까지 100개 이상의 국가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고, 백신 약 3억 회분이 소요됐다. 일부 국가는 다량의 백신을 선제적으로 확보해 전 국민 대상 접종을 하고 있지만, 백신 확보 경쟁에서 밀려난 저개발 국가들은 백신이 도착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현실이다. 영국의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2023년까지 전 국민 대상의 백신 접종이 불가능한 국가도 있을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집단 이기주의로 코로나19 백신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백신 보급의 불균형 현상을 예견했는지 지난해 8월19일 일반 알현에서 “코로나19 백신은 모든 사람,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백신의 차별 없는 공급을 호소한 바 있다.
백신의 차별적 보급으로 파생된 국가 간 불균형 현상을 바라보며 사회 정의의 부재를 절감한다. 인류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백신이었지만, 백신 보급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자취를 감췄다. 집단 이기주의가 극단적으로 심화하고 있다. 차별 없는 행복한 세상은 요원한 것인가? 사회 정의는 행복한 세상을 함께 만들기 위한 전제(前提)이다.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무엇보다도 인간 존엄성이 존중돼야 하며, 연대성 또한 실현돼야 한다. 모든 사람은 천부적으로 존엄하므로, 이에 따라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 모두 함께 서로 돕고 배려하며 보완해야 한다.
코로나19 시대, 어느 때보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를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인류 공동체가 처한 위기 속에서 국가와 인종, 종교를 초월하는 ‘형제애’의 실천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한국천주교회가 전개하는 백신 나눔 운동은 코로나 위기를 극복해 행복한 사회를 만들려는 하나의 실천적 노력이며 인류 공동체를 향한 간절한 호소일 것이다.
정진만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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