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요건 낮춘 개정안 입법예고... 청구권자 수따라 6단계 기준 세분화
개표요건 폐지·전자투표 근거 마련, 결과 확정도 ‘4분의 1 이상’으로 변경
주민소환제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 임기 중 직무에 문제가 있을 때 주민투표를 통해 제재하는 제도다. 지난 2007년 7월부터 시행된 주민소환제는 투표요건이 비현실적이어서 추진이 어렵다는 의견과 소환사유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아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과천에서는 김종천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이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주민투표법과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은 제도 본연의 취지에 맞춰 주민참여의 제도적 틀을 획기적으로 낮춘 점이 특징이다. 이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주민소환제 개정안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 주
■ 주민소환, 주민의 권리 vs 정치적 악용 우려
실제 지난 14년 동안 치러진 주민소환투표 중 개표가 진행된 건 20% 정도다. 그간 10건의 주민소환투표가 진행됐지만, 투표함을 열어본 건 단 2건에 그쳤다. 나머지 8건 모두 ‘3분의 1 이상 투표율’ 문턱에 걸려 주민들의 의사를 확인하지 못했다. 반면 과천시는 지난 2011년 여인국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이 이뤄졌고 올해는 김종천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이 진행 중이다. 이처럼 과천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이 이뤄진 건 유권자 수가 5만5천여명으로, 청구권자 서명을 8천여명만 받으면 소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행안부 주민소환 개정안 입법예고… 제도적 틀 대폭 낮춰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주민투표법과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번 개정안은 제도 본연의 취지에 맞춰 주민참여의 제도적 틀을 획기적으로 낮춘 점이 특징이다. 이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개정안에 따르면 주민소환 청구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광역·기초지자체·지방의회 등 3단계로 단순하게 나눴던 청구요건을 주민소환 청구권자 총수에 따라 6단계로 세분화했다. 현재는 시·도지사의 경우 청구권자 총수의 5%, 시·군·구청장은 15%, 지방의원은 20% 이상이 동의해야 주민소환을 할 수 있으나, 개정안은 인구 규모를 5만명 이하, 5만명∼10만명, 10만명∼50만명, 50만명∼100만명, 100만명∼500만명, 500만명 이상 등으로 나눠 각각 기준을 달리 적용했다. 주민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해야 개표할 수 있었던 개표요건은 폐지된다. 투표율과 관계없이 투표결과를 확인하게 된다. 투표결과 확정 요건은 ‘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 투표 및 유효투표 과반수 득표’에서 ‘투표권자 총수의 4분의 1 이상 투표 및 유효투표 과반수 득표’로 바뀐다. 공직선거법상 선거권 연령 하향 조정에 따라 주민투표권 연령도 만 19세 이상에서 만 18세 이상으로 낮아진다. 특히 이번 개정안은 종이 서명부 외에 온라인 서명청구를 도입하고 온라인 포털·휴대전화 앱 등을 활용해 어디서나 투표할 수 있도록 전자투표의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직접 대면을 통한 서명요청 활동이 문자메시지, 인터넷 홈페이지, 직접통화 등으로도 서명이 가능해진다.
■ 주민소환 개정안 주민 참여도 높였지만… 개인정보 유출 등 개선방안 필요
이처럼 주민소환 청구요건 완화와 전자투표ㆍ문자메시지를 통한 서면요청으로 주민참여도를 높였지만, 주민소환에 대한 명확한 사유가 명시되지 않아 주민소환 남발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과천지역은 지난 2011년 여인국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이 이뤄졌다. 시장이 주민의사와 관계없이 보금자리지구 지정을 수용하고, 정부 과천청사 이전대책을 소홀히 했다는 점이 소환 사유였다. 하지만 주민소환투표는 유효투표율(33.3%)에 크게 못 미쳐 개표 없이 종료됐다. 당시 정책에 대한 평가는 시의회 또는 다음 선거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이뤄져야 하는데, 명확한 사유 없이 주민소환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와 관련 당시 여인국 시장은 “주민소환제도가 진정으로 필요한 부분은 보금자리주택이나 청사이전 등과 같은 정책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비리나 부도덕에 대한 법적 제재가 미흡할 때 이뤄져야 한다”며 “모든 정책에는 찬반의견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으로 주민소환투표가 이뤄진다고 하면 재선거와 같다.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하다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 주민소환 남발 막기 위해선 주민소환 미성립 시 구상권 청구해야
주민소환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소환사유를 명확히 해 남발되지 말아야 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데 소환이 성립되지 않을 경우 지출비용에 대한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등 장치가 보완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1년 당시, 과천시는 주민소환투표를 위해 선관위에 5억원을 위탁했으며 이 중 3억4천300만원을 지출했다. 이뤄지지도 않는 소환을 위해 혈세가 쓰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김종천 시장 주민소환은 약 10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전망이다. 특히 현재 주민소환은 개인정보에 대한 보호장치가 없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주민소환투표 청구인 서명부는 성명, 생년월일, 주소, 서명 등을 게재하는데, 관련법에는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장치가 없다. 이에 따라 서명 요청권이 있는 주민소환 투표청구대표에게 개인정보에 대한 의무와 책임 등을 부과하는 조항을 신설해야 하고, 서명부의 개인정보를 다른 용도나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할 때는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정책을 수행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민소환을 당하는 건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현재 발의된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주민소환 청구요건을 완화했지만 주민 소환 청구사유 제한을 두지 않아 주민소환제가 남용될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과 주민투표법 개정은 주민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주민소환 사유에 대한 규정과 비용청구 등에 대해선 이번 개정안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앞으로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장기적으로 검토할 사항”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으로 주민소환이 남발된다는 우려에 대해선 “주민소환 청구요건을 완화됐다고 하지만, 유권자의 일정 비율에 대해 서명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남발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과천=김형표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